[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23)가을 나무의 냄새
가을은 나무들이 그동안 깊숙이 간직했던 그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계절이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나서 둘러보았더니 계수나무가 그 독특한 향을 온 천지에 자랑하고 있었다. 계수나무는 잎이 달걀모양으로 생긴 넓은 잎의 나무로 키가 20m쯤 자란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자생하지 않았고 중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나무이다. 1920년대에 경기도 광릉에 들여와 심었다는데 처음 심었던 그 나무는 국립수목원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가지가 모양이 아름답고 멋진 단풍과 향을 갖고 있어 공원이나 아파트 주변에 많이 심는다.
봄에 나오는 계수나무의 어린잎은 자주색을 띤다. 강하게 내리쬐는 자외선과 벌레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다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초록색의 잎으로 변화한다. 그래야 광합성을 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계수나무가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나타내는 계절은 10월쯤이다. 초록색의 잎이 노란색의 단풍이 되면서 멀리까지 달콤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계수나무 잎에 함유된 맥아당이 달콤한 향의 원인이다.
이쯤 해서 독자 여러분들은 우리 한반도의 근대 최초 창작된 동요로 알려진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라는 구절에 나오는 나무가 바로 이 나무인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이 나무의 이름을 작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 나무를 일본에서 한자로 桂(계)로 썼기에 ‘계수(桂樹)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미 ‘목서(木犀)’ 또는 ‘계수나무’라고 불리는 중국 원산의 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이 나무를 ‘목서’로만 쓰도록 정리되었다. 그래서 윤극영 선생이 작사ㆍ작곡한 ‘반달’이 1924년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동요 속의 계수나무는 ‘목서’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가을철 나무의 냄새로는 은행나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말한 계수나무의 달콤한 냄새와는 달리 은행나무의 냄새는 형언하기 어려운 역겨운 냄새이다. 은행나무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암나무에서 열린 열매에서 나는 냄새이다. 필자가 표현한 ‘달콤하다’ 또는 ‘역겹다’라는 말은 다분히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이고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부질없는 표현이다. 나무들은 이런 냄새를 통해 자신들의 생존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암나무에서 열리는 은행 열매는 겉껍질이 익어갈수록 냄새를 품어낸다. 과육질에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nkgoic acid)’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냄새는 다른 동물이 은행 열매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후손으로 번식되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다. 요즘 서울을 비롯한 지자체들이 가로수로 심은 은행 열매 냄새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보도된다. 열매가 달리지 않는 수나무만 골라 가로수로 심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테지만 어린나무를 심을 때 암수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기에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이유는 공기를 깨끗하게 정화하는 능력이 크고, 병해충에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나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관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나라 도심에 심어진 가로수 중 40 이상이 은행나무라는 통계도 있다.
가을에 나무들은 단풍과 낙엽, 냄새 등으로 자신을 표현한 후 생장을 멈추는 겨울을 맞이한다. 내년 봄 새로운 부활을 위해 나무들은 이렇게 깊숙이 감추었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며 퇴장할 준비를 한다.
신원섭 라파엘(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