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요즘 걸어서 출퇴근하는 것이 몸에 배고 있다. 차를 타기에는 애매한 거리라서 아주 급하지 않으면 걸어서 다니고 있다. 더욱이 지난번 회의차 독일에 다녀온 후로 걸을 수 있는 거리는 걸어 다니고자 한다. 내가 머물렀던 지역의 사람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국가가 시행하고자 하는 에너지 정책에 가족과 또 한 개인으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참여를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문화가 되고 있었다.
비단 개인이나 가정만이 아니라 상점과 성당에서도 참여할 방법을 찾고, 일찍 문을 닫는다거나 성당에서는 냉난방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하면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하는 이 없이 오히려 거기에 삶으로 적응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미 이들의 문화임을 알 수 있었다. 방 안에서도 너무 환한 불을 밝히지 않고, 거리에도 너무 많은 등을 밝히지도 않는다. 에너지 정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는 노인 수녀님의 맑은 의식과 해맑은 모습이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러니 내 안에서 간혹 ‘불편한 일’에 대한 생각이 올라오면 오히려 더욱 견뎌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최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생태영성적 삶에 대하여 물어오면 나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먼저 ‘성찰’과 ‘의식 전환’, 그리고 공동체적 차원에서는 ‘의식 전환’과 ‘건전한 문화 만들기’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린다. 우리 삶이 특별한 이벤트에 의존한 행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요소에서 자신이 돌보고, 만들어가는 그 행복을 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평신도’를 ‘세상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표징’(교회헌장 38항)이라고 표현하였다. 세상 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평신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알게 되었을 때에 교회가 얼마나 깊이 하느님 백성을 소중하게 인식하고 있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 노동하여 가족을 책임지는 일, 부모님을 모시는 일, 배우고 가르치는 일, 올바른 기사를 쓰고 진정성 있는 방송을 하는 일, 생명을 돌보고 그 생명이 보전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 사람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는 일, 사람들의 의식 전환을 위해 연구하는 일 등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일들이다. 이 일들을 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일이 아주 대단한 이벤트에서가 아니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우리 하느님은 우리를 만나시는 방법으로 가장 밀도 깊게 만날 수 있는 음식, ‘빵’으로 오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시기를 바라신다.
해마다 평신도 주일이 되면 신심 깊은 평신도들 가운데 몇 분이 본당 주일미사 강론에 초대되는 것을 봤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자녀를 생각하는 애끓는 마음과 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갈 때에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 결국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사랑’을 몸소 살아가는 예수님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거룩한 일’을 일상 안에서 이루고 있는 것이다. 거룩함은 그저 두 손을 모았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고, 수단이나 수도복을 입었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닮은 그 일을 하는 것, 하느님의 거룩함을 닮아 가는 것, 사랑을 사는 것이 바로 거룩해지는 일이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거여. 그렇게 살아가기가 쉬운 줄 아니? 그것도 매일매일 노력하는거여.” 다시 한 번 깊은 숨으로 내 가슴에 살아있는 사랑을 기억해본다. 진정 우리는 모두 일상 안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표징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