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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66. 가난한 모습의 우리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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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잿빛 보도블록 위에 노오란 은행잎이 떨어져 환하게 빛을 밝힌 듯하다.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채여서 길가에 모여있는 부서진 조각들조차도 끝까지 빛을 발하는 듯해 보인다. 그들이 있어서 우리의 여름이 그래도 아름다웠음을 마음으로 전하며 걸었다.

광화문 앞 광장이 정비된 후로 나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돌로 된 대형 화기에 나무들이 심겨있고, 돌로 만들어진 블록 사이에 화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정말 어울리지 않는 발상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무와 꽃들이 그나마 남은 생명력으로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누군가의 성과를 위해 자신들을 심어놓고, 흙조차 제대로 덮어주지도 않고 화려한 꽃을 피우라고 영양제를 놓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나마 여름날에는 나무와 꽃의 무성한 잎으로 그들의 실체를 가릴 수 있었지만, 겨울이 되니 광장과 앙상한 나무들과 생뚱맞게 다가오는 낙엽이 ‘정말 생태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정말 주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생태’를 말하면서 하나의 이벤트성으로 생명 돌보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그 어떤 존재의 존엄함을 기억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영향을 미치고 배려하는 환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마저 이용할 때가 많다. 우리 자신만을 위해 지구 자원을 마구 사용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자고 말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돌봄’의 가치보다는 ‘나 보기 좋으라고’, ‘성과를 위해’ 생명을 심었다가 뽑았다가 하고 있다. 환경이 그렇게 조성되면 사람들의 의식에는 이런 식의 가치관이 형성되게 된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광화문은 잘 치장된 말 잔치 같은 느낌이다. 결국, 이 환경에서 사람들은 의도나 동기, 역사관, 가치관을 보는 것이 아니라, 허울 좋은 옷매무새에 어울리는 포토존 정도로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광화문 광장은 그 역사성이 살아 숨 쉬도록 하는 것이 가장 생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발길일지라도 오늘 자신에게까지 살아 있는 그 시간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디딜 수 있는 그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기 좋으라고 계절마다 꽃을 심었다가 뽑았다가 하는 환경 조성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쉽게 취하고 버리는 문화와 돈으로 다 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뭔가 잘못된 생활태도에서 올바른 길로 돌아서기 위해 ‘생태적 회심’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회심의 길은 뭔가를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덜 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보태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도시 환경이나 본당 환경을 결정하는 사람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각 개개인의 원의와 삶도 중요하다. 우리의 바람이 그분들의 결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5세기에 집현전에서 광화문이라고 명명할 때에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와 백성을 비춘다’고 의미를 담았다. 그러니 광화문 광장은 백성들의 울부짖음과 애환이 펼쳐지는 장소이지, 각종 행사로 이목을 끄는 장소가 아니다. 거기에는 가난한 우리 백성들이 설 자리가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건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그곳을 빛낼 하느님 백성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성당의 관리장님께서 성탄을 준비하시다가 너무 화려한 장식들이 성당에 붙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우리 성당에도 예수님이 오실까요?”

교회는 하느님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주님께 바람을 가지고 찾아와 주님 앞에 조아릴 수 있도록 문이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그 가난한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 앞에 살아계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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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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