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pixabay |
내가 사는 청주는 ‘플라타너스’의 도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 나무 가로수가 많다. 특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오는 길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참 일품이다. 과거 이 진입도로가 확장되기 전에는 그야말로 플라타너스가 울창해 터널을 만들 정도로 명소였다. 길이 확장되고 나무들을 다시 옮겨 심으면서 옛날 같은 풍경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커 가면서 점점 아름다움을 더 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멋진 플라타너스 길이 있다. 차량 통행이 한적한 이 길에는 여름 큰 덩치의 나무와 그에 걸맞게 큰 잎들이 햇살을 가려주어 시원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또 가을이 깊어지는 이맘때는 갈색으로 변한 낙엽이 쌓인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최고의 낭만을 주는 거리이기도 하다.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인기 있는 이유는 잘 자라고 풍성한 모양과 큰 잎이 햇볕을 잘 차단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도심에서는 매연과 여러 곳에서 나오는 먼지들을 흡수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북미 등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가로수로 널리 심어졌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 런던 시내의 가로수 60 이상이 양버즘나무였다.
이렇게 오염과 기후 변화 완화, 그리고 도심의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어주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사람들의 욕심과 자기들만의 생각으로 가장 많은 수난을 겪기도 한다. 주변의 전선을 훼손시키고 상가의 간판을 가린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플라타너스 가지를 자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어느 심한 지역의 겨울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마치 기둥만 남긴 것 같이 몸뚱이만 남겨둔 채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래도 어느 지역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둥근 나무의 형체를 나타낼 수 있도록 가지를 쳐 주어 다행스럽다. 또한, 서울 서초구에서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네모 반듯하게 깎아 ‘사각 가지치기’를 한다.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무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 그 지역의 품격을 보는 것 같다. 특히 가로수는 수종의 선정에서부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그 지역의 상징이므로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경관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플라타너스는 나무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고유 수종은 아니다. 1900년대 초쯤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심어졌다. 플라타너스의 우리 이름은 버즘나무이다. 나무의 표피가 얼룩덜룩한 버즘의 증상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버즘나무 중에도 우리 주변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은 거의 양버즘나무 종류이다. 우리가 통상 부르는 플라타너스(Platanus)는 그리스어의 플라티스(platys), 즉 ‘넓다’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갈래가 세 개 또는 다섯 개로 된 넓은 잎을 가지고 있기에 나무 이름이 붙여졌다. 추위에도 강하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플라타너스는 성장이 매우 빠르다. 1년에 2m까지 자랄 수 있다니 목재 자원으로 잘 활용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기록에 의하면 미국에 있는 양버즘나무는 키가 45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언젠가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한 공원을 방문했는데 공원 전체가 플라타너스를 집단으로 심어 관리하고 있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주로 가로수로 된 플라타너스를 보아 나무 모양이 가지를 펼친 둥근 모양만 생각하는데, 그곳의 플라타너스들은 마치 자작나무와 같이 흰색 빛이 돌기도 하고 쭉쭉 뻗은 나무줄기가 얼마나 늠름한지 인상적이었다. 이런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주변 상가에서 민원이 들어와 멀쩡한 채로 뽑혀 다른 나무로 심어진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만일 플라타너스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어라 할까.
신원섭 라파엘(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