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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매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를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19. 죽음을 잘 준비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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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공포나 무서움이 우리의 영혼을 덮치도록 허락하지 않는 대신, 매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그것을 기록하면 어떨까. pixaby 제공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성인께서는 물론 안녕하시겠지요? 아무 탈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냐는 ‘안녕’이란 이 소중한 인사말, 그동안 참 많이도 습관처럼 내뱉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있어요. 주님의 날이 갑자기 밤의 도둑처럼 찾아온다는데, 저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별이란 불청객이 불쑥 찾아오리라는 것을요.

몇 년 전,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전 부산에 있었답니다. 흔들림을 강하게 느꼈지요. 그때 너무 놀라 정신이 멍해지면서 ‘어떡하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지?’ 하며 무서운 공포가 밀려오고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런데요. 똑같은 그 시간에 대구에 계셨던 한 사제는 바로 무릎을 꿇어 십자성호를 긋고 통회의 기도를 드렸다고 해요. 그 사제가 참으로 위대하게 보였어요. 반면에 저 자신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고요. 똑같은 상황과 같은 시간에 누구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 대피할 생각에 정신이 없었고요. 또 누구는 고요히 마음을 다독이며 두 손 모아 주님을 맞이하려 했던 거지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산대로 죽는다고 하더니 나는 여태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구나.’ 죽음을 두려움 없이 편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성인의 지혜를 나눠 주세요.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은 김 수녀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만남도 이별도 모두 ‘안녕’이라고 말하지요? 만나면 이별하고 이별하면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으니 만남과 이별은 닮은 듯합니다. 그래요. 누구나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구도 ‘이 정도면 됐어’하면서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사람, 있을까요? 아무도 완벽하게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고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죽음은 두려운 거지요.

우리 주님도 죽음을 두려워하셨어요. 인간의 본성을 지닌 주님께서는 부활할 것을 아시면서도 죽음의 고통 앞에 두려움에 떨며 처절하게 절규했지요. ‘이 잔을 제발 거둬달라고, 왜 나를 버리셨냐’고 외치면서요. 그런데요. 이 외침은 절망인 것 같지만 희망이었어요. 두려움은 절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무서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요. 교회의 교부들이 “죽음을 무서워하지(afraid) 말고, 두려워(fear)해야 한다”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던 김 수녀는 죽음을 무섭게 공포로 받아들였고요. 조용히 두 손 모아 기도한 그 사제는 죽음을 두려워한 것이지요.

죽음을 두려워하되, 무서워하거나 놀라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두렵지요. 두려워해야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좋지 않은 삶의 여정을 걷게 되고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요. 사실 진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장소는 죽음이 아니고 그 이후의 세상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거나 혹은 잃을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많은 성인도 이 마지막 단계의 여정에서 구원받지 못할까 두려워했던 거지요.

그런데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 사랑의 섭리 아래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처럼 그 이후도 잘 돌봐주시리라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주님께서 보내주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하느님께 그 어떤 것도 구하지 말고 동시에 그분에게서 오는 그 어떤 것도 거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니까 죽음을 구하지도 말고 죽음이 왔을 때 거절하지도 말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영혼의 평화를 잃을 정도로 무서워하지는 마세요.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는 공포에 굴복하지 말아요.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지금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빼앗아 가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살아있는 이 소중한 순간을 잃어버려요.

아무것도 구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 좋겠습니다. 이것만이 착한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착한 일상의 삶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은 우리는 매일 소소한 일상 안에서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매 순간 높은 불확실성과 위험 그리고 상실을 경험하며 사는데요. 예고 없이 찾아올 죽음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맞이합시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나 무서움으로 우리의 영혼을 덮치도록 허락하지는 마세요. 어떻게 하느냐고요? 매일 매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그 감사의 마음을 기록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죽음의 리허설을 하세요.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그렇게 눈을 감아요.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면서 행복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세요!

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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