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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67. 함께 희망을 찾기 위하여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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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집을 나서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차가운 길바닥에서 떨어지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내가 곁으로 가자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날개를 펼쳐 날아보려는 듯했지만 날기를 포기하고, 다만 몇 걸음 옆으로 비켜서더니 이내 포기하려는 듯 몸을 웅크리고 다시 바닥에 몸을 붙이려 했다. 그 순간 비둘기의 발을 보며 왜 날 수도 없고 걷기도 힘든 건지 알 수 있었다. 비둘기의 한쪽 발에 피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엾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정말 많은 비둘기가 주변에 모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보였다. 다친 비둘기 주변에 다른 비둘기들이 날지 못하고 어찌할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지켜보다가 어떻게 도와줄 수 없어서 길을 나섰는데 온종일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비둘기들이 함께 무리를 이루어 아픈 비둘기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니, 문득 철새들이 떠올랐다. 가을철 시골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철새들의 이동장면을 기억해보면, 그들은 알파벳 ‘V’ 형태로 날아간다. 맨 앞서서 날고 있는 그 새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 보이는데, 사실 이들은 교대로 선두를 바꾸어가면서 날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비행 중에 사고로 다치거나 지친 동료 새가 있으면 함께 쉬어가는데 아픈 새가 죽을 때까지, 혹은 회복할 때까지 무리 가운데 몇 마리가 남아서 기다려준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함께 날아올라 무리에 들어간다고 한다. 날아가는 새들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힘내라’는 격려의 소리라고 한다. 새들이 서로를 위해서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생각하니, 인간이면서 그 당연한 몸짓을 어려워하는 것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얼마 전 우리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소환시키는 일이었다. 모든 국민이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마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동안 사람들은 검정 옷을 입고, 버스 안에서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할 말을 잃어서 말을 못하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일로 여기며,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청년과 청소년들이 분향소 앞에 머물며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돌이킬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제 더는 이태원으로 가지 않겠어’라든가, ‘핼러윈데이에 모이지 않겠어’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이번 참사로 세상을 떠난 그들을 추모하며 마음 깊은 침묵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그들의 마지막을 잘 지켜주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 중의 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님의 곁에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는 예수님을 비난하였지만, 다른 죄수 하나는 예수님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청한다. 진정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탓하고, 원망하고, 절망하고, 비난하고, 필요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것으로 생각한다. 새들도 보여주는 ‘함께’는 우리가 직면한 모든 어려움 앞에서 ‘그래도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일까? 희망!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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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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