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의 두 번째는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헛되이 부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 계명에 대해 교리서는 “사소한 일에 그분 이름을 부르지 말 것”과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 것”(2155)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의 이름을 걸고 맹세까지 하며 남에게 돈을 꾸었는데 갚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부모의 이름을 헛되게 부른 것이 됩니다. 결국 두 번째 계명은 하느님 이름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이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사용한다면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로마의 주교좌인 라테라노 대성당 앞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동상이 있습니다. 라테라노 대성당을 보며 깜짝 놀라는 모습입니다. 저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대성당 앞에 거지의 옷을 입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여겨졌습니다.
당시 교회는 재물과 권력으로 매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수도회를 지향하는 회칙을 가져와서 승인을 요청하자 교황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교황은 잠을 자다가 라테라노 대성당이 무너지고 있는데 어떤 거지가 어깨로 성당을 받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잠에서 깬 교황은 그 거지가 프란치스코였음을 깨닫고, 수도회 회칙을 승인해 줍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무너져가는 다미아노 성당에서 “나의 교회를 재건하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때는 다미아노 성당을 재건하라는 말씀으로 알았지만, 나중에 제자들은 그 말씀이 재물을 좋아하여 무너져가는 교회를 재건하라는 것이었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 아닌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다 지도자층에 의해 박해받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칫 가리옷 유다처럼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2143)하거나 “거짓을 가장하려고 하느님을 내세우는”(2151)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故) 이태석 신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성당을 세울지, 학교나 병원을 세울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분은 성당을 세우기보다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결국엔 하느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함이 아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작아져야 하고 그리스도는 커지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더 가난해져야 하고 이웃은 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빛은 세상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 되라는 뜻이고, 소금은 그래서 그들이 죄에 썩지 않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타야하고 녹아야 합니다. 십자가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이름 때문에 주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를 위험성을 언제나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나의 영광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