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자의 인권을 무시한 채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모습을 여과 없이 묘사하는 자선 단체들의 모금 캠페인 풍조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빈곤 마케팅’ 뒤에 가려진 수혜자들의 눈물과 처지를 함께 고려하는 진정한 나눔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극적인 모금 뒤 숨겨진 비밀
한국은 과거 원조 수혜국에서 지금은 공여국으로서 ‘나누는 국가’로 국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세계자선지수’(World Giving index) 등 해외 기부 현황 지표들도 한국이 국민총소득(GNI) 대비 해외 기부금이 아시아에서 1, 2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 활발한 기부 문화가 정착한 지도 30여 년이 흘렀지만, 다소 어두운 이면도 존재한다.
“여러분의 월 3만 원 후원이 이 아이를 살립니다.” 이 같은 문구가 낯설지 않듯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NGO, 대형 해외 기부 단체들이 모금 캠페인을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과 가족이 아프고 병든 모습, 앙상한 뼈만 드러낸 채 굶주린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의 존엄과 인권이 ‘모금의 도구’가 되는 이 같은 현상을 이른바 ‘빈곤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른다.
‘빈곤 포르노그래피’는 가난이나 재난, 질병, 장애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상황을 일방적으로 편집하거나 여과 없이 전시해온 구호ㆍ자선 단체들의 자극적인 마케팅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1980년대 유럽의 기부 단체들이 굶주린 아이들의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사용돼온 용어로, 가난과 아픔을 보여주는 방식이 폭력적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개념이다.
수혜자들의 빈곤을 마케팅으로 삼는 ‘빈곤 포르노’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방식이 기부 단체의 모금 성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모금 단체 관계자는 “극심한 가난을 비출수록 후원자들의 반응은 즉각적이며, 이는 모금력과 직결된다”며 “오랫동안 자리 잡은 ‘기부 성과주의’가 자극적인 모금 캠페인을 끊지 못하게 하는 유혹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캠페인에 등장하는 대상자의 상황과 가정환경이 생각보다 덜 어려워 보이면 ‘저 사람은 살 만한 것 아냐?’ 하며 기부를 꺼리기도 한다”며 “이로 인해 후원자들 또한 극심한 가난의 모습만 기대하는 고정관념에 세뇌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선, 사랑을 체험하는 행위
다른 문제는 후원자들도 ‘빈곤 포르노’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여전히 아프리카나 중동 등 지역을 극심한 빈곤 국가로만 여기거나, ‘빈곤 포르노’를 최근 정치권 논쟁에서 불거져 나온 신조어 정도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모금 캠페인 시 일어날 수 있는 아동 인권 침해와 대상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의무 규약을 정하고, 이를 지키도록 권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부 단체별 가이드 라인 준수, 캠페인 제작 과정에서 수혜자 배려 정책, 약자의 인권까지 고려한 캠페인 시행 등 기부 및 모금 문화의 정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국제협력단체인 한국희망재단 손이선 사무처장은 “저희는 수혜자를 지원 대상자가 아닌, 협력자로 바라보며 그들의 자립과 희망을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점을 늘 상기하고, 영상과 사진을 고르고, 캠페인 문구를 정할 때에도 그들의 처지와 인권을 고려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금의 성과가 아니라, 이웃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오랫동안 함께 협력하고, 여기에 기부자들이 동참하도록 독려한다면 기부를 향한 고정관념과 인식도 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자선의 행위를 자비의 실현으로 보고, 사랑의 실천이 일치를 고양하는 능력이라고 가르친다. 교회는 자비로운 사랑의 행위가 ‘주고받는 개념’이 아닌, 모두가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된다고 전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에서 “자비를 일방적으로 남에게 베푸는 선행이라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우리의 행동과 의도를 계속해서 순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우리가 자비로운 사랑의 행동을 하는 순간에 우리 또한 자비를 입는다는 깊은 신념을 갖고 행동할 때에 사랑의 행동이 참다운 본연의 행동이 된다”(14항 참조)고 말했다.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돕기(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는 “수혜자와 모금가, 기부자는 ‘삼위일체’가 되어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발전하기 위한 하나가 돼야 한다”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고 나누는 방향으로 자선과 나눔의 문화가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느님의 사랑인 자비에는 함께 아파하는 공감과 연민, 그리고 변함없는 돌봄이 포함돼 있다”며 “그리스도인들부터 정의롭지 않거나 불공정한 구조를 개선하고, 취약 계층이나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 일시적 빈곤 해결보다 우선적인 해결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