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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70. 기다림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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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의 분 냄새이다. 우리 어머니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 처녀가 시골, 그것도 섬으로 들어와 사시게 되었으니, 어머니께서는 외가에 가실 적마다 가장 좋은 옷을 입으시고, 얼굴에는 평소 바르지 않던 분도 바르셨다. 배를 타고 나가셨어야 했으니, 하룻길로 다녀오실 수 없었고 이튿날 혹은 사흘째나 되어서야 돌아오셨는데, 어머니를 기다리는 나에게는 몇 달이 지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배가 도착할 즈음 선착장으로 가서 놀다가 어머니께서 배에서 내리시는 것을 보고 달려갔었는데, 마치 긴 세월 동안 헤어졌던 엄마를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반가웠다. 그때에 어머니께서 나를 꼭 안아주셨는데, 나는 어머니에게서 나는 그 분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분 냄새는 어머니의 향기처럼 느껴졌다. 요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화장품 향기가 아니라, 촌스럽지만 익숙한 분 냄새가 지금도 내 어머니의 향기처럼 다가온다.

나에게 기다림은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그리움은 막연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랑의 기억으로 기다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 여정 안에서 수녀원 밖에서 산 시간보다, 수녀원 안에서 산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 문득 돌아보니 차곡차곡 쌓인다는 생각보다는 한 해 한 해가 기다림으로 걸어온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상황들, 다양한 일들과 사람들을 마주하고 살아오면서 나는 점점 더 분명하게 한 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릿수건 밖으로 드러난 내 머리카락이 점점 더 하얘지고 있는 만큼 나는 그 한 분에 대한 사랑으로 점점 더 물들어 가고 있다. 내 좁은 생각으로는 감히 계획할 수 없는 이 삶 안에서 내 그리움의 대상인 하느님께서는 기다림으로 걷고 있는 나에게 당신을 순간순간 맞이하도록 문을 열어주셨고, 이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길을 걷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떤 삶이라도 그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삶 자체가 하느님을 기다리고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했던 요한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의 삶 곳곳에서 주님께서 오실 길을 미리 준비하며, 그분이 오실 때에 알아보게 될 표징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자신이 기다리던 분이 당신인지를 여쭐 수 있었다. 그리고 일종의 암호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기다리는 이라면 당신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임을 말씀해주신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 것이었다.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하는 이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 요한의 제자들에게 또 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요한은 자신의 온 생애 동안 자신이 기다리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며 살았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그것을 알려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암호와도 같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항상 내 마음이 설레는 것은 왜일까? 그러면서 문득 우리 곁에 눈멀고 귀먹으며, 병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희망을 보는 세상인지, 아니면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세상인지 묻게 된다. 나 역시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 오심을 기다리지만, 그분이 누구에게로 다가가시고 손을 뻗으시는지 보고 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분과 함께하지 않으면 그분이 드러내시는 표징을 알아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를 알고 마중 나가는 이의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내 주변의 가난한 이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흐르도록 할 때에 그분 오실 길이 마련되는 것임을 깨어 살펴보자. 평화!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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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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