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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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대림 제3주일 - 사랑에 야윈 세상, 복음의 기쁨으로 채워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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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주일 아침, 올려다본 하늘빛에서 은은한 향기가 묻어날 듯합니다. 얼핏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저 고운 하늘빛을 붓에 찍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 싶었습니다.

지난 주일, 교회는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신장을 위해서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인권 주일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충만한데요. 주님의 뜻을 위하여 언제나 ‘이웃을 생각하고 살피고 채워주는’ 자선의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마음에 불쑥 선배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지갑을 열어 베푸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고백하건대 이 얘기를 누구에게도 들려드린 적이 없습니다. 자칫 돈을 밝히는 사제로 오인을 받을까 겁이 났으니까요. 또한 인간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은 수없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에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해의 소지를 불사하고 용기 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미사와 성경과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선물해 주신 미사와 성경과 기도로써 하늘을 향하여 탄원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선물하신 미사와 성경과 기도는 주님의 현존이며 하느님의 마음이며 하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복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와 성경과 기도야말로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이며 최고치의 축복인 까닭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속해 있는 사람’의 긍지로 온 세상에 희망을 선물해야 하는 복된 주인공입니다.

레위기는 하느님께서 당신께 봉헌되는 제물에 차등을 두신 사실을 알려주는데요.(레위 5,7 참조) 이야말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점에서 감동을 일으킵니다. 값비싼 송아지를 바친 사람이든 양이나 염소를 바친 사람, 혹은 가장 저렴한 비둘기 한 쌍을 바치는 모두에게 공정한 제사의 효력을 약속하신 것이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물의 많고 적음에 전혀 차이를 두지 않으시며 차별을 하지도 않으시니 말입니다.

문제는 값비싼 송아지를 바치는 것보다 저렴한 비둘기를 바치는 게 훨씬 영리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제물의 차등은 오직 가난한 사람을 위한 조처이며 제각각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신 주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모습이니까요.

이리 생각하니, 사제는 말문이 막히는 느낌입니다. 그저 하느님께서는 당신 일을 완성하시는 데에 반드시 우리의 찬미와 제물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와 봉사와 희생은 하느님께는 매우 보잘것없는 것임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이 진리는 교회가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라는 고백 안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는 말씀을 전해 올립니다. 송아지를 바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음에도 달랑 비둘기 두 마리로 때운다면 하느님을 속이는 기만행위이며 주님께 바치는 제사를 욕되게 할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따라서 가진 것이 많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비둘기 두 마리를 봉헌한다면 분명한 잘못임을 선언합니다.

성경은 ‘보다’라는 동사를 두 가지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저 육안으로 본다는 의미를 지닌 ‘블레포’(blepo) 와 영적 시선을 뜻하는 ‘호라오’(horao) 인데요. 오늘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는 물으심에서 땅에 고정된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들어 올리라는 당부를 건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과연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교회 안에서는 또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숙고하라는 뜻으로 듣게 되는 까닭입니다. 부질없는 것에 몰두하여 주님의 뜻에 어긋난 우리 걸음을 돌려세우시는 강력한 주님의 손길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에 질색하십니다. 가졌음에도 나누기에 어설픈 손길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살아가는 삶과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 스스로의 경계선을 긋고 미사와 성경 말씀과 기도를 신앙의 장식품인 양 소홀히 여기는 우리의 뻔뻔함에 상처받으십니다.

우리는 순명을 통해서만 주님께서 주신 행복을 ‘주님과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순명이야말로 하느님의 행복을 소유하게 되는 제일의 비결이 됩니다. 부디 순명이란 상대의 감정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순명이란 무조건이며 어떤 것도 계산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 무엇보다 순명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온통 사랑임을 헤아리시어 삶의 행복과 즐거움의 근원이신 주님께 기쁨을 선물해 주십시오.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기다림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 주간, 우리 모두의 시선이 ‘호라오’로 변화되는 은혜가 있기를 청합니다. 우리의 자선에 기댈 수밖에 없는 허약한 이웃 안에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제발 사랑에 야위어 자선에 옹졸했던 마음이 복음으로 통통해지기를 소원합니다.

하여 하늘에 보존된 우리의 놀라운 가치에 감격하며 더 큰 찬미를 올리는 귀한 믿음인으로 자리하시길 간곡히 기도드립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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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도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그 열매를 내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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