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시고, 다섯 달이 지나도록 집에 가지 못했었다. 조금 긴 날을 잡고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도무지 그 시간을 내지 못했다. 12월이 오자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주말에 하룻밤을 끼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는 88세의 연세에도 여전히 바삐 뭔가를 하고 계셨다.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바느질하고 기도하는 데에 보내셨다. 수녀원식으로 표현하면 ‘재봉실 소임’인 것이다. 본래 바느질을 잘하셨지만, 눈도 침침하실 어머니께서 돋보기를 끼고 종일 바느질을 하셨다.
“느이 아버지 돌아가실 때에 입으시라고 삼베로 옷을 지어놨더니만, 장례식장에서 다른 것을 입혀 드렸어. 방구석에 두고 보기가 그래서 내가 다시 다 뜯어서 베보자기 만들었더니 느이 올케가 가져다가 필요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좋아한대. 두부 망 같은 거는 요즘 사람들 만들 줄 모르거든.”
바느질하신 것을 보니 정말 섬세하게 잘하셨다. 젊은 날에 수 잘 놓기로 유명하셨지만 지금 저 연세에도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손바느질하고 계셨다.
어머니 방에 들어가면 기도 상에 아버지 영정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얼굴을 보니 곁에 계신 것처럼 다가왔다. 방에서 아버지의 침대를 치우는 문제로 어머니는 맘이 상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의 침대를 버리지 않고 그냥 방에 두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짧은 시간 어머니를 보며 그냥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이나 살가운 표현은 안 하셨지만, 그래도 평생을 함께하셨다가 혼자 되시니 그 몇 가지 흔적을 쉽게 태워버리기가 어려우셨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문득 말씀하셨다. “예순여섯 해를 함께 살았어. 그려도 나는 아버지 만나서 이만큼 살았으니 됐어. 복 있는 거지. 그려도 뭔가 서운하고 그려.”
오후 세 시가 되니 어머니는 “이제 기도 시간이여. 이 시간에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도하면 제일 좋아.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있으면, 느이 아버지 저 침대에서 같이 기도했던 것이 떠올라. 하늘에서도 같이 허겄지. 느이 아버지는 하느님 곁에 있을 겨. 좋은 사람이니께”라고 하시며, 묵주를 꺼내셨다. 기도 소리를 들어보니, 단순한 묵주기도가 아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포함하여 온 가족을 기억하는 기도였다. 평소에는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실 줄 모르면서도 기도에서만은 당신 마음을 다 쏟아내서 표현하셨다. “사랑이신 아버지, 당신께서 불러가신 요아킴은 착한 사람입니다. 부디 아버지 품에서 평안할 수 있도록 안아주소서”로 시작하신 어머니의 기도에 나는 뒤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귀하게 여기신 몇 가지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셨다. 내가 청원자일 때 아버지께 만들어드린 복주머니를 기도상에 두셨길래 주머니를 펼쳐 보았다.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묵주와 내가 그렸던 그림들 가운데 인쇄된 것들을 오려서 모두 모아 두셨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냥 둬. 내가 모은 거여.”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모으신 줄 알았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렇게 함께 일하고 계셨다.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 알고 보면 어머니께서 하신 일이었고, 두 분이 늘 함께 하고 계셨다.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를 생각하니, 저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성가정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신 마리아와 그 곁에서 함께 조용히 믿음으로 걸으신 요셉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집에, 더 맛난 음식을 먹는 것 보다, 저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마리아를, 그리고 순박함 속에서 요셉을 볼 수가 있다. 이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임마누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