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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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23.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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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불행일까. 예수님은 가난하게 태어나셨다. 마음이 가난하고, 처지가 가난한 이웃 모두에게 오셨다. CNS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만약에 예수님께서 지금 이 세상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물론 대단한 학자나 재벌로 오시지는 않겠죠. 그렇다고 연예인이나 스포츠인 혹은 정치인으로 오실 거 같지도 않고요. 굳이 가난하게 오신다면요. 현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나시기도 어렵고요. 목수라는 직업도 엄연한 전문직이니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도 가난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10명 중의 8명은 스스로 빈곤층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옛날처럼 먹지 못하고 머물 곳이 없어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아닌가 봅니다. 자신을 스스로 패배자라 여기는 사람들. 그들은 언제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지 몰라 위기감 속에서 불안에 떨며 산다고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불안증에 시달리며 사는 세상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이 시대의 가난은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와의 극심한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고통이라고 할까요?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닌, 더 가지지 못해서 가난한 것일까요? 방도 없어 마구간에서 초라하게 태어난 아기 예수님, 오늘날 이 세상에 오신다면 어떤 가난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실지 궁금합니다.

가난한 자로 태어나셨고 가난한 자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김 수녀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지금 이 세상에 아기 예수님이 오신다면 역시 똑같이 가난한 자로 가난한 자에게 오실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초라하고 어두운 내면에 태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마구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닌 고통과 상처로 신음하는 우리들의 마음일 테니까요.

이 시대의 가난은 옛날과 다르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역시 이 시대의 부도 단순히 재물을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부유한 것도 아니겠지요.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24)

단지 많은 재물을 소유했다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닐 거예요. 재물을 모으는데 정신없이 사는 사람, 오로지 물질에 빠져 더는 이웃을 보지 못하고 재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불행하겠지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재물을 소유하지 않아 가난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니지요.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는 사람, 가난하다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살아간다면 그 역시 마음속에 재물을 묻고 살아가는 불행한 부자일 테니까요.

예를 들어 독약을 가지고 있다 하여 문제가 될까요? 독약을 약으로 적절하게 처방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지요. 잘 관리하지 못하면 약도 독이 되고 잘 사용하면 독도 약이 되는데요. 재물도 소유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에 쌓아두는 순간, 불행해집니다.

살아가면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 부족함을 얼마나 인내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결정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스스로 재물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들은 할 말이 참 많아요. 부양할 자녀가 있고 노후도 준비해야 해서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야 인정받고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면서요. 그런데 그 ‘어느 정도’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지요. 그렇기에 계속 재물을 쌓는 일에 마음을 주고, 결국 제대로 다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해요.

이상하게도 재물을 향한 욕심은 불처럼 타올라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탄산음료처럼 마실 때만 시원하고 늘 목이 마르고요. 중독성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먹을 때는 좋지만, 영혼의 비만과 각종 마음의 합병증을 가져오고요.

어떤 이는 떳떳하게 정직하게 벌어 자수성가해서 모은 재물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죄냐고 따져 물어요. 하지만 그 재물을 지키느라 온통 마음이 재물 속에 갇힌다면 탐욕의 죄를 범하게 되지요. 게다가 혹시나 쌓은 재물을 잃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그것도 역시 탐욕입니다. 자신이 탐욕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간단합니다. 가지고 있던 물건을 잃었을 때 자신을 잘 보세요. 물론 힘들게 모은 재물이 부당하게 사라졌다면 고통받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 생명을 빼앗긴 듯 낙심하면서 오랜 세월 원망하고 애통해 하면서 슬픔 중에 살아간다면 그것은 탐욕이고 이미 그는 불행합니다.

손해를 입더라도 크게 상심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나누면 부유해도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그렇게 한다면 그는 이미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이 가난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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