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지조와 절개의 대나무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31)속은 비었지만 단단한 나무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출처=pixabay.


나무와 풀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무는 줄기가 목질화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줄기가 광합성을 통해 성장하면서 탄소 통조림처럼 꽉 차 있다. 또 나무는 여러 해를 살며, 줄기에 형성층(形成層)이 있어 줄기가 굵어지고 키도 큰다. 그런데 이런 기준에 맞지 않는 식물이 있다. 바로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줄기가 목질화돼 있고 여러 해를 살지만, 부피생장을 하지 않는다. 대나무는 30~50일이면 키가 다 자라서 다음 해에 더 굵어진다든지 더 커지지 않는다. 식물학자 이유미 박사의 저서에 따르면 하루에 54㎝까지 자란 대나무의 성장 기록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빠르게 자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나무는 이렇게 나무와 풀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기에 나무인지 풀인지 항상 논란을 가져온다. 그래서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찬바람이 매서운 겨울의 대나무 숲을 좋아한다. 대나무의 줄기와 잎새를 돌아 나와 볼에 부딪히는 싸늘한 촉감이 좋고, 바람의 양과 세기에 따라 내는 다양한 숲의 소리가 좋다.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와도 그 큰 키의 대나무는 휘청일 뿐 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에 몸을 맡겨 휘청이다가도 바람이 잦아들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대나무의 유연함도 보기 좋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댓잎에 소복하게 쌓이는 눈이 참 아름답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지조와 절개의 나무로 곧잘 표현된다. 그래서 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로 불리며 그림의 주요한 소재가 되어왔다. ‘매난국죽’의 순서는 계절의 순서에 따른 것인데 이른 봄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 여름철 깊고 단아한 향기와 모습의 난초, 가을의 찬 서리에 꽃을 피우는 국화, 그리고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곧게 서 있는 대나무를 상징한다고 한다.

대나무라고 표현하지만, 그 종류는 매우 많다. 또한, 종류에 따라 대나무의 쓰임새도 각각 다르다. 엄청난 높이로 크게 자라고 줄기도 굵은 왕대가 있고, 키가 5m 정도로 자라며 모여 크는 이대, 그리고 산에 잘 자라는 조릿대가 대표적인 대나무 종류이다. 대나무의 쓰임새는 의식주 모두에 긴요하고 그 종류가 하도 다양해서 일일이 언급하기가 어렵다. 지난여름 영국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자들과 함께 자연과 소리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때 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인 대금연주자로 활약하는 김혜림 선생의 연주를 들었다. 숲과 어울리는 대금의 청아하고 마음을 울리는 소리는 우리는 물론이고 외국의 학자들까지 깊은 감동을 주었다. 바로 그 대금이 대나무로 만드는 악기이다. 마디의 양쪽에 골이 생기는 돌연변이 형태의 ‘쌍골죽’이라 불리는 대나무로 대금을 만든다는데 이런 대나무는 음질이 균일하고 꽉 찬 음색을 낸다고 한다.

민가 주변의 산에서 자라는 조릿대는 매우 번식력이 강해 한번 퍼지면 온 산에 퍼지기 쉽다. 이 조릿대는 옛날 쌀을 일어 올릴 때 조리를 만드는 재료였다. 신년이 되면 복조리라 하여 구입해 벽에 걸어 두는 전통이 있었다. 대나무에 관련된 용어나 사자성어도 많다. 우리가 보통 한 달을 나눌 때 초순, 중순, 하순이라고 하는데 죽순이 크는 시기를 따져서 나눈 기간이라고 한다. 또 ‘우후죽순’이란 말은 대나무의 뿌리가 땅속에 뻗어 죽순이 나오는데 비가 오면 수분이 충분해서 여기저기서 죽순이 나오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실제 비가 온 후 대나무밭에 가보면 바닥에 엄청난 죽순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할 정도이다.

대나무는 속이 비었지만 부러지지 않는 강인함을 지녔고 빨리 자라지만 단단한 나무이다. 나무인지 풀인지 구분이 잘 안 되지만 절개와 기상은 남다르다. 환경에는 잘 적응하되 그 정체성은 뚜렷함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12-2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9

에페 6장 23절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평화가, 그리고 믿음과 더불어 사랑이 형제들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