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서는 안식일에 쉬지 않거나 미사에 참례하지 않으면 중죄를 짓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2181 참조) 그 이유는 안식일 준수의 의무가 십계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어기면 대죄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안식일 법을 어기면 사형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셨기에 죽임을 당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요한 5,18 참조)
왜 그리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라는 법이 중요할까요? 우리에겐 오히려 일을 열심히 하는 근면성실함이 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쉬는 일입니다. 안식일은 “일의 속박과 돈에 대한 숭배”(2172)에서 벗어나게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은 ‘주님 부활’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안식일이라 하지 않고 ‘주님의 날’이라 합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당신 부활과 연결하게 하심으로써 “안식일의 영적인 참의미를 완성하고,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예고”(2175)하는 날이 되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죽음과 부활 후에 들어가는 천국을 되새기는 날로 삼게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분명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유익을 위해 생긴 것입니다.(마르 2,27 참조) 우리 삶의 목적은 결국 안식에 있습니다. 하루 중 낮에 열심히 일하는 목적이 밤에 편안한 잠을 자기 위한 것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야 일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안식일에 쉬지 않으면 이런 삶의 방향을 잃게 됩니다. 안식일을 잘 안 지키면 노동이 삶의 목적이 되어 결국 돈 버느라고 바빠서 하느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디오게네스는 거지였고 알렉산더는 대왕이었습니다. 술통에서 잠자는 디오게네스에게 알렉산더가 물었습니다. “왜 온종일 놀기만 하느냐?”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에게 “왜 전쟁만 하십니까?”라고 되묻습니다. 결국, 전쟁이 다 끝나 편하게 쉬기 위함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자신은 벌써 그 목적대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결국 쉬지 못하고 전쟁만 하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에 병들어 죽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결국 쉼입니다. 따라서 주일엔 반드시 쉬어야 하고, 반드시 기쁘고 행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쉼은 곧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의 쉼을 재현하는 예배가 미사입니다. 이 때문에 미사 없는 주일은 의미를 잃습니다. 교리서는 이 날이 “기도와 휴식”을 위해 주어졌다고 말하고 반드시 “기뻐하고 즐거워”(2178)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일미사 전례와 쉼을 통해 반드시 천국의 행복이 구현되고 이를 통해 일주일간 열심히 일한 목적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창조주이시자 당신 백성의 구세주이신 하느님을 찬미하여 그 주기성과 정신을 이어받습니다.”(2176)
따라서 고해성사하지 않기 위해, 혹은 마치 부담스러운 의무를 다하기 위해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주일의 의미에 맞지 않습니다. 미사가 천국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쉼과 찬미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미사에 참례하지 않는 것보다 미사에 억지로 참례하는 것이 더 나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쉼이 의무처럼 힘들게 인식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전례는 더 활기차야 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오랜만에 부모를 만나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주일이 천국의 재현이 될 때 신자들은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 곧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