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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리 수녀 |
안녕하세요.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에 ‘아름다운 노년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인사를 드리게 된 박진리 베리타스 수녀입니다. 토끼는 장수의 상징이자 재치 있고 꾀가 많은 동물로 여겨져 왔습니다. ‘토끼띠인 사람은 일생동안 풍요롭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덕담처럼 한 해의 시작이 주님의 품 안에서 평화롭기를 희망해 봅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이라는 소임 특성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르신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르신들은 “누구보다 뜨겁게 청년 시기를 보냈고, 자식에게 고생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아끼고 절약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말합니다. 치열하게 가장의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에 대한 준비는 하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하여 막막하고 불안하게 지내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누구나 꿈꾸어 왔을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한 가설은 다양합니다. 조선 세종 29년, 수양 대군이 세종의 명에 따라 소헌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쓴 책 「석보상절」에서 ‘아름답다’의 ‘아름’은 ‘나’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는 뜻이며, 내가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꽃과 비교하면서 화려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오는 오해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다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면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고자 합니다.
어느 본당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었을 때 만난 안나 할머니(당시 83세)가 떠오릅니다. 새해 아침 성당 입구에 나가보니 잔뜩 쌓여있는 매일미사 책 위에는 “새해 은총 많이 받으세요. 매일미사 책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니 한 권씩 가져가세요”라고 연필로 꾹 눌러서 쓴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미사에 온 신자들이 “다음엔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말하며 감동의 미소를 짓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 또한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사무장님을 통해 안나 할머니가 2주 전부터 매일미사 책 100권을 예약하고는 매일 폐지를 모아서 번 돈으로 정산한 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안나 할머니를 만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자 깜짝 놀라시며, “아무도 몰라야 하느님께 공이 돌아갈 텐데 들켰네요. 이 늙은이도 누군가를 위해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공공일자리를 통해 새벽마다 쓰레기 줍는 일을 하며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받으십니다. 월급날이면 새 지폐를 준비하여 책갈피에 꽂아 두었다가 주변 이웃이나 뉴스에서 보도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봉헌하고는 하셨죠. “안나 할머니, 참 아름다우세요!”라는 나의 고백을 들으셨을 때 손톱이 닳아 없어지고 손등이 터져 거칠어진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저의 기억 속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인인식조사’에 의하면 노인에 대한 선입견에 의해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시고 제2회 담화문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고 아름답습니다. 노년은 모든 세대를 위한 선물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인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로 바라볼 때 노년의 삶이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박진리(베리타스) 수녀
[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 생활](1) 노년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