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 참된 우정을 나누려면
▲ 참된 사랑과 우정을 위해선 서로 덕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반 알현에서 만난 아이와 포옹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행복한 만남도 아픈 이별도 ‘안녕’이라고 한다. 편할 안(安), 편안할 녕(寧), 편안하고 또 편안하길. 그저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니다. 평안하고 싶은 무의식적 나의 욕망이기도 하고, 당신도 안전하고 무사하길 바라는 따뜻한 가슴의 언어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는 안녕에는 다소 온도 차가 있다. 만남에는 어쩌다 마주치는 이에게 흘리는 미지근한 안녕, 친숙한 이에게 나누는 따뜻한 안녕, 한눈에 반해 불타는 뜨거운 안녕, 친절하면서도 차가운 광고성 안녕도 있다. 이별에는 낙엽 따라가 버리는 쌀쌀한 안녕,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안녕, 가도 그만인 뜨뜻미지근한 안녕, 기약 없이 떠난 아프고 가슴 시린 안녕도 있다. 저마다의 온도는 다르지만, 그래도 안녕이라 말할 수 있어 좋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빛과 그림자 모두에게 안녕을 빌어주는 우리말이 참 좋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서른즈음에 / 김광석)
사람의 향이 듬뿍 풍겨오는 천연의 목소리에 짙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전해진다. 이런 이별은 해도 괜찮을 거 같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니니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 사랑은 머물다가 떠나고 또 잊히면서 이별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또 새 만남으로 이어진다. 만남과 이별은 유기체적 관계라서 가는 한 해, 오는 새해에 모두 안녕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동안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과 가상편지를 주고받았다. 성인이 세상을 떠난 지 400년, 살레시오 영성을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새해를 맞아 성인의 편지와는 이별을 고하고 다른 형식의 글과 만남을 이어가련다.
익숙해서 당연하고 소소해서 무심한 일상 안에서의 안부를 묻고 싶다. 보면서도 보이지 않고 들으면서 듣지 못하고 만지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에게도 안부를 물으련다. 마냥 머물 것 같은 사랑하는 가족, 평범하지만 소중한 이웃, 넘치는 소비에 앓고 있는 자연 그리고 즐기면서 중독되는 오늘의 매체 환경 안에서 오늘의 안녕을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물, 환경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영적이면서 행복한 우정을 맺기를 소망한다. 살레시오 성인의 ‘우정’에 대한 말씀으로 성인과 이별을 고하련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에게
사랑이라고 해서 모두 우정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사랑받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주기만 해서도 안 되고 받기만 해서도 안 되는 것이 우정이에요. 서로 주고받는 사랑에 깨어 있어야 하고요. 그러니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하겠지요.
무엇보다 선한 마음이 우정의 가장 든든한 토대가 되어줍니다. 만약 서로 주고받는 마음이 그릇된 것이라면 우정도 그릇된 우정이겠지요. 참되고 귀중한 것을 나눈다면 우정도 보화 같은 것이고요. 좋은 꽃에서 좋은 꿀이 나오듯, 성덕으로 주고받는 우정은 고귀합니다. 상대에게 자신의 안일함과 쾌락만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동물의 교제나 다름없어요.
남녀의 결혼이라 해서 참된 우정을 보장해주지는 않아요. 남녀가 외모나 언변 혹은 외적 조건에 끌려 감각적인 쾌락으로 맺어질 수 있겠지만요. 이런 사랑은 양지에 쌓인 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부부나 젊은 연인들 그리고 친구와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무엇을 나누고 있나요? 어떤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습니까? 어떤 덕을 서로 교류하면서 서로에게 배움을 주고받습니까? 나누는 ‘그것’이 바로 우정의 품격을 결정해요.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그런데 참된 우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덕을 나누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친절, 겸손, 미소, 봉사, 관대함, 사랑, 희생, 신중, 분별, 용기, 정의를 나눕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우정은 거의 완벽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덕이 하느님께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는 완전한 우정입니다. 하늘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지상에서 천국으로 이어지는 사랑만큼 완전한 것이 또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새로운 한 해에 사람과 사물, 자연 그리고 하느님과의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우정을 맺어가길 바라며 김 수녀와 독자 여러분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