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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200.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48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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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암컷이 다스린다. 암컷이 서로 쌓아 올리는 우정은 매우 견고해서 수컷이 결코 독재자처럼 군림할 수도, 폭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도 없다. 여전히 아무리 작은 갈등이라도 항상 반드시 해결해 나가며 모두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살아간다. 여전히 낯선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얼마나 멀리서 왔든 상관하지 않고 친구처럼 반긴다. 여전히 친구를 가족처럼 지킨다.”(보노보 핸드셰이크, 「우리가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 성경에 나타난 폭력들

구약성경을 보면 당황스러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폭력입니다. 예컨대, 우상을 숭배했다는 이유로 3000명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현대인들은 납득할 수 있을까요?(탈출 32,27) 이스라엘이 예리코를 점령할 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여 완전한 봉헌물로 바치라는 말씀은 어떨까요?(여호 6,21) 물론 이런 장면들은 오늘날과 다른 고대의 상황이 반영됐으며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메시지를 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성경의 폭력은 신학적 사고에 따라 편집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바빌론 유배가 끝날 즈음(B.C. 6세기경) 쓰인 여호수아기의 예리코 점령사건은 신앙에 충실함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이방 풍습을 단호히 끊으라는 내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폭력을 엄격하게 금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 인간의 폭력성

그런데 중요한 고민이 발생합니다. 성경의 폭력은 바로 인간의 폭력성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저버리고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우 아벨을 죽인 카인, 얄미운 동생 요셉을 죽이려 하고 팔아넘긴 형제들, 적국 니네베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길 거부했던 요나 등 무수히 많은 폭력이 인간에 의해 자행됩니다.

이런 폭력은 판관기에서 더 심각하게 확산됩니다. 힘없는 여인을 능욕하고 살해하며, 이스라엘 지파 간 전쟁으로 수만 명이 죽습니다. 그 원인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악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그 핵심은 하느님의 권위와 존재가 인간에 의해 거부됐기 때문입니다.(판관 2,10-11) 그런데 이런 만행들은 옛날 이야기로만 그칠까요?


■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안타깝지만 눈부신 발전을 이룬 오늘날도 직간접적인 많은 폭력이 존재합니다. 하느님과 복음을 거부한 채 욕심에 사로잡혀 사랑과 자비를 잊은 차가운 마음으로 자행되는 비극들입니다. 번영과 풍요로움은 이뤘으나 평화와 상생을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해 보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빵과 물고기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 사랑, 자비, 용서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평화로워집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필리 2,3) 존중하며, 복음을 실천하는 우리를 통해 평화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이뤄집니다.


“하느님의 질서를 바꾼 인간의 자발적 행위에 따라 세상은 피 흘림과 분열을 겪었다. 인간관계와 사회관계에서는 폭력이 출현하였다. 평화와 폭력은 공존할 수 없으며, 폭력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수 없다.”(「간추린 사회 교리」 48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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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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