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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리 수녀 |
새벽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차가운 바람에 발을 동동거리며 수도원에 들어서면 구석진 창문 앞에 꽃을 피운 작은 화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전에는 주홍빛 기린 꽃이, 지난주에는 흰색의 베고니아 꽃이, 오늘은 보랏빛 꽃이 다소곳이 피어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계절도 잊은 채 피어있는 꽃은 작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의 감탄과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한겨울에도 꽃을 피워내는 마법의 손을 지닌 분은 80세가 넘은 할머니 수녀님이십니다. 날마다 화초에 물을 아주 조금씩 주시는 모습을 보며 “수녀님! 물을 한꺼번에 많이 주면 매일 매일 수고롭게 물을 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하고 묻자, 할머니 수녀님은 “사랑은 수고로움을 생각하지 않아요. 줄 수 있어서 행복하고, 볼 수 있어서 행복해요. 이런 내 마음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꽃을 피워 내는 화초들을 보면 그저 고맙고 경이로워서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된답니다.” 할머니 수녀님의 부지런한 손길을 통해 피어난 꽃을 보면 우리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어느 무명인이 썼다는 단순한 시가 떠오릅니다.
‘벌은 꽃 속에, 꽃은 정원 속에, 정원은 집 속에, 집은 마을 속에, 마을은 나라 속에, 나라는 우주 속에, 우주는 하느님 속에, 그래서 그래서 하느님은 다시 벌 속에…’
간혹 “수도자는 은퇴하는 나이가 몇 살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수도자에게는 은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연세가 들면 활동적인 소임보다는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며 움직일 수 있는 한, 어떤 소임이 되었든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분은 바느질 소임을, 어떤 분은 안내실 소임을, 어떤 분은 주방 소일거리를, 어떤 분은 기도를…. 연세 많으신 수녀님께서 나이와 수도 연륜을 떠나 젊은 장상 수녀님에게 허락을 청하는 모습은 ‘수도원 안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저에게 있어 수도생활의 롤 모델은 새 수녀 때의 원장 수녀님이십니다. 무엇이 되었든 사목에 도움이 되고 하느님을 전하는 일이라면 해 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모든 활동을 지원해 주고 주방 식사 준비를 당신이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성당에 자주 못 나오시는 분들을 찾아가서 그분들의 애환을 들어 주셨고, 병중에 있는 신자들을 매주 찾아뵈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신자들을 향해 길을 나서는 행동하는 수도자, 경청하는 수도자, 기도하는 수도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바를 꾸준한 행동으로 옮길 때 좋은 덕(德)이 된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았을 뿐 손과 발로 옮기지 못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화초에 물을 주고,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고, 손을 잡아주고, 궂은일을 하는 것이 한두 번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꾸준히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의 크기를 떠나서 성실하게 그 무엇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주변으로부터 존중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노년이 되어서 노년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일상 안에서 좋은 습관이 될 수 있도록 평범함을 재정립해 보면 어떨까요?
상대를 빛나게 할 수 있는 일은 손짓 하나로도 가능하며 그 빛은 또한 나를 비추기 때문에 함께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박진리(베리타스)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