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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리 수녀 |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하고 요양원도 경쟁구도 형태로 변화되었습니다. 시설도 잘 갖추어졌고 서비스의 형태도 다양해져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아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혼자 생활할 때보다 식사도 영양을 고려해서 정확한 시간에 세끼가 제공되고, 목욕 서비스도 규칙적으로 주어지고, 시간마다 프로그램도 마련됐는데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권리 중에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은 몇 가지나 누리며 살아가고 계실까요?
자기 결정권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요양원에 입소 상담을 하러 가면 대부분의 요양원에서는 정보를 그곳에서 생활하게 될 노인보다는 보호자에게 제공하고 보호자는 본인이 원하는 조건에 만족하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노인에게 있어 요양원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내게 될 삶의 자리이기에 좀 더 마음을 기울여 살펴보고 싶은데도 자신의 의사나 결정이 고려되지 않습니다. 입소해서는 시설에 대해 아는 정보도 없이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로 마음이 혼란스러워 식사를 잘하지 못하고 시간표를 잘 따라가지 못하면 적응을 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노인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합니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순간 노인들은 자식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여 우울감이 높아집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혼자 살기를 바라는 어떤 노인은 “김치 한 가지를 먹고 살아도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다니고 싶을 때 다닐 수 있는 게 가장 큰 자유이며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어르신들은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말을 건네주는 사람도 없고 말을 걸고 싶어도 행여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건네지도 못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공터에 나가 걸었던 길을 또 걷고, 보았던 것을 또 보아도 시간이 좀처럼 길게 느껴져 시간이 고통이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을 봅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평균연령은 83.5세이고 건강수명은 66.3세입니다. 건강수명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연령을 말하는데, 평균수명에서 건강수명을 빼면 17년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결코 짧지 않은 17년의 세월이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기에 노후를 위한 준비는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수명을 늘려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관리와 운동이 필수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자녀와 손주들 걱정에 조바심을 좀처럼 내려놓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걱정은 할수록 많아진다는 건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은 5에 불과하고 95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걱정을 해줘서 고마워하는 자식들이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 자녀들은 부모님이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 편안하시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노인이 되면 고집이 더 세진다고 하지요.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자녀들은 하소연합니다. 자랄 때는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먹는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이 들어서는 ‘자식들 말 잘 들으면 늙어서 호강한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옷 사준다면 늙어서 입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거절하지 마시고, 자녀의 마음을 잘 받는 것도 노년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평생 해오던 걱정을 이제는 내려놓고 인생만큼 그윽해진 차 향기 맡으며 노년의 여유로움을 즐겨보면 좋겠습니다.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박진리(베리타스)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