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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리 수녀 |
지난 한 해 동안 구글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는 ‘기후 변화’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별 과일과 꽃피는 시기가 확실하게 구분되었는데 지금은 계절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기후에 따른 이상 현상이 전 세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흥미롭게 읽은 기사가 있습니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시드볼트’에 관한 내용입니다. 시드볼트(Seed Vault)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또는 전쟁이나 핵폭발과 같은 재난에 대비하여 식물이 멸종하지 않도록 유전자원을 보존하는 시설을 말합니다. 경북 봉화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4900여 종자. 17만 8000점 저장)은 지하 60m에 최첨단 시설을 갖춰 ‘금고’의 성격을 지닌 시설입니다. 전 세계에서 두 곳이 있는데, 노르웨이와 한국뿐이라고 합니다. 산불과 태풍 등 자연재해로부터의 소실을 막기 위해 천연기념물 종자도 저장할 계획이라고 하니,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과 기술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식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대 간에서도 좋은 심성은 잘 보존하고 전승하는 노력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시드볼트처럼 특별한 장소를 마련하지 않아도 우리는 마음이라는 금고 안에 삶으로 터득한 지혜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귀한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삶이 참으로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화려한 사진과 영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광고가 나옵니다. 이에 마음이 휩쓸려 갖고 있던 것을 더 사용할 수 있음에도 새로 사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며 기능이 약한 것은 버려도 된다는 의식이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노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경우가 일부 있습니다. 새로운 것만을 강조하면 기존의 것이 가지고 있는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깊은 맛은 머무르고, 숙성되고, 음미할 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관계도 보이는 현상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며 관계가 깊어질 때 상대를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많은 것들이 사라지듯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꼭 있어야 할 인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말 한마디와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함께 공존하려는 마음은 점점 옛것이 되어 요즘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어른 세대는 젊은 세대들에게 풍요로움이 행복의 전부인양 한쪽으로만 치우친 사랑의 방식을 물려주어 주변의 어려움과 상관없이 내 것만을 챙기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가족문화를 통해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한다면 달라서 아름답고, 나눔으로 인해 풍요로운 문화가 되어, 다음 세대들에게는 좋은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느 가정은 어른부터 손주까지 요일을 정하여 그날은 그 사람 중심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월요일에는 할아버지의 날, 화요일을 할머니의 날 등등) 또 어느 가정은 한 달에 한 번 조부모와 함께 산책하기를 정하여 실천하기도 하고, 어느 가정은 가족통장을 만들어 경조비로 쓰기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온 가족이 모여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손자들에게도 유대감을 배울 좋은 기회가 제공되고, 가족 간의 친교를 통해 고립감이 해소될 수 있는 가족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세대 간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박진리(베리타스)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