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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pixabay. |
‘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란 말이 있다. 이 말뜻에 가장 적합한 사자성어가 바로 ‘松茂柏悅(송무백열)’, 즉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도 기뻐한다’란 말일 것이다.
언젠가 배탈이 나서 동네 내과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 배가 아프다고 하니 ‘혹시 사촌이 최근에 땅을 사셨나요?’ 하며 의사가 농을 해와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요즘은 남의 기쁨이나 슬픔을 나누는 데 참 인색한 세상이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고 세태를 꼬집는 말이 생겼다고 하니 말이다.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은 모두 가지만 앙상히 드러낸 나목인데 소나무와 잣나무는 진녹색의 잎을 그대로 간직한 채 숲에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내고 있다. 이런 겨울날 따뜻한 생강차에 잣 몇 알을 띄어 마시며 흰 눈이 쌓인 숲을 바라보는 여유는 참 호사스러운 일이다. 여름에는 수정과나 식혜에 띄운 잣이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킨다. 동의도감이나 본초강목에도 “잣을 장복하면 몸이 가볍고 따뜻해진다”라고 하였다니 잣이 옛날부터 귀한 음식이나 약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잣나무는 외모도 소나무와 비슷한 것과 같이 소나무과에 속하며 영어로도 ‘pine’이라 불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잣나무의 영어명은 ‘Korean Pine’으로 돼 있어 외국인들은 잣나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로 많이 착각하고 있다. 잣나무는 추운 날씨를 좋아하는 나무이기에 남쪽 지방에서는 높은 곳에서 잘 자란다. 중부 이북 지방에서 더 많은 잣나무가 자라는 이유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압록강 상류 지역이나 백두산에 잣나무가 빽빽한 아름다운 숲이 장관을 이룬 곳이 있다고 한다.
잣나무는 늘 푸르고 또 잘 자라면 30~40m 이상 크고 곧게 자라 소나무와 같이 늠름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잣나무를 풍요와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 민화나 도자기 그림의 소재로 많이 썼다. 1970년대부터 계획적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산림녹화 사업에서 잣나무는 리기다소나무, 낙엽송에 이어 세 번째로 조림을 많이 한 수종이다. 포천, 가평이나 홍천 등 중부 이북지방에 많이 심어졌으며 지금도 이 지역은 우리나라 최대의 잣 생산지역으로 꼽힌다. 신라 경덕왕 14년(755)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민정문서’에 잣나무를 인공적으로 심은 것으로 짐작되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하니 잣나무의 조림역사는 매우 깊다. 잣은 높은 곳에 달려있고, 이를 일일이 사람이 올라가 따야 하기에 위험한 작업이다. 또 지금은 인건비가 높아 잣 생산 임업가들이 많은 고충이 있다고 하니 잣 한알 한알에 그분들의 노고가 숨어있음을 알고 고마워해야겠다.
그럼 이쯤에서 독자들은 ‘잣나무와 소나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할 것이다. 여러 차이가 있기만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바늘잎의 개수를 세어보면 안다. 소나무는 두 개씩 묶여 있고 잣나무는 다섯 개가 묶여 있다. 그래서 잣나무를 오엽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잣나무의 잎은 일반적으로 소나무보다 길며 나무줄기의 색깔도 검은색을 띤다. 잣나무 열매는 솔방울보다 좀 더 길고 한 개의 방울에서 100여 개의 잣을 생산하는데 이런 방울이 달리기까지는 20년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다람쥐와는 달리 몸집이 크고 검은색 털을 가진 청설모는 잣을 참 좋아한다. 잘 키워 놓은 잣나무의 잣을 이 녀석들이 훔쳐 먹기에 임가에서는 골칫거리이다.
잣나무는 목재로서도 아주 훌륭하다. 부드러우며 붉은색을 띤 아름다움이 그 가치를 더한다. 송진이 많이 함유돼 옛날에는 가공하기 힘들었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향기와 보존력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