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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퐁니·퐁넛 마을을 방문한 강우일 주교가 학살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
한국 사법부가 베트남 전쟁 중 일어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7일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는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63)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3000만 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전 참전 중이던 한국 군인들이 마을 민간인 74명을 집단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8세였던 응우옌 티탄씨는 그 사건으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5명을 잃었고, 본인도 복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 2015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요구해 온 그는 2020년 4월부터 국가배상소송을 시작했다. 1심 판결 후 그는 “학살 피해로 목숨을 잃은 내 가족을 포함한 74명의 희생자들이 이번 승소를 통해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0일 입장문을 발표한 한베평화재단 이사장 강우일 주교는 “이번 판결은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수용하겠다는 겸허하고 용기 있는 선언”이라며 “이는 갈등 관계를 해소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첫 번째 수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제국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가 80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 후유증이 더 굳게 딱지가 되어 우리 가슴에 고착돼 있는 것처럼, 우리도 비슷한 상처를 베트남에 안겨줄 수 있다”며 “참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성숙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치유하고 어루만져야 한다”고 전했다.
베트남 랑선-까오방 교구를 방문 중이던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도 5일 주일 미사 강론을 통해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 군대가 평화를 거슬러 잔인한 폭력을 저지른 일에 용서를 청한다”고 사과했다. 이에 랑선-까오방 교구장 자우 응옥 찌 요셉 주교는 “이기헌 베드로 주교께서 형제이자 한국인으로서 용서를 청한다는 강론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화답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