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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숙시키는 겨울 숲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38)겨울 숲에서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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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한 것들을 느끼고 체험하게 한다. 얼마 전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었을 때 월악산의 깊은 숲에 갔었다. 무릎까지 쌓인 눈길을 뚫고 한 시간여 걸어 찾아간 숲은 마치 새롭게 창조된 어떤 세상에 와 있다는 신비함을 주었다. 월악산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술림이라 자주 방문하는 곳이지만, 이때만큼은 정말 딴 세상, 새로운 곳이었다. 온통 눈으로 덮여있는 숲은 완벽한 순수를 맛보고 느낄 만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고요가 이렇게 무거운 느낌인지도 처음 알았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완벽한 고요함과 침묵이 길게 이어지는 경험, 마치 귀가 완전히 닫혀있는 느낌이었다. 이때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찢기며 침묵의 공간을 깨는 순간 내 몸은 그 소리와 함께 전율이 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또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의 신비로운 순간을 인본주의 심리학에서는 ‘정상경험(peak-experience)’이라고 한다. 정상경험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가장 상위단계에 있는 자아실현, 즉 인간이 잠재성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런 심리적 성숙의 시간이 바로 정상경험이다. 월악산에서의 겨울 숲 경험은 내겐 정상경험이었고, 또한 심리적 성숙 경험이었다. 겨울 숲에서 온몸을 드러낸 채 당당히 서 있는 나목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반성해 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도 저 나무같이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나무는 숨기지 않고 그대로 다 내보인다. 또한, 겨울 숲의 찬바람은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를 혹독하게 꾸짖는다.

겨울의 숲은 외롭고 조용하지만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머금은 기다림의 숲이다. 나무가 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몸을 불리는 일, 더 많은 후세의 번식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분신인 씨앗을 멀리 보내고 나면 한 해의 숙제가 끝난다. 나무들은 겨울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긴 세월을 참아낸다. 지난여름 무성하던 잎들이 준 영양분을 몸에 받아서 다음 해 봄에 싹 틔울 새로운 잎눈을 감추어 놓는다. 때론 외롭고 고요한 숲에 새들이 찾아와 머물곤 한다. 그럴 때면 한동안 반갑기도,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한다. 다람쥐들도 찾아와 가을에 나무뿌리 옆 구멍에 숨겨놓은 도토리를 찾아간다. 이렇게 다람쥐와 새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어느덧 숲에는 밤이 찾아온다. 햇볕이 없어지고 바람이 매서운 겨울밤은 길기만 하다.

간밤에 내린 소복한 눈은 마치 나무들에 옷을 입힌 것처럼 포근함을 준다. 온 세상이 하얀색으로 변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깨끗하다. 이 아름다움 때문에 많은 예술가가 설경에 매료되나 보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다가올 봄의 가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겨울 숲을 찾는 사람들은 이런 외로움이 좋다. 겨울 숲은 마음껏 혼자만의 고독을 즐길 수 있다. 겨울 숲에서 느끼는 고독은 생산적인 고독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혼자 있게 두지 않는다. 혼자 있다는 것은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설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런 시간을 많이 갖는 사람일수록 심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일 것이다. 세상의 근심을 모두 버리고 나를 찾는 여행으로서의 겨울 숲을 가보자. 가서 적막함과 고독함, 그리고 외로움을 가슴속 깊이 느껴보자. 그리고 겨울 숲과 나목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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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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