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공부한다는 말은 흔히들 시험 준비를 한다거나 무슨 기술을 익히는 것으로 통하지만 그 말은 몸을 닦는다거나 마음을 잡는 일, 또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으로 통했다. 그런 식의 공부가 아쉽기 짝 없는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먹고 입고 돈 쓰는 일에 비하여 묵상하고 반성하고 전망하는 일을 너무나도 등한시하는 형편이다…. 참으로 오늘날 심각한 문제는 신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이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누가 사람이냐」)
■ 춘래불사춘
이 즈음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춘래불사춘’입니다. 지금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제 심정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는 1년 넘게 이어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 지진에다, 여전히 기근과 난민 문제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뿐입니까? 국내 상황은 또 얼마나 복잡한지요? 피폐해가는 민생,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정치권, 국민연금 개혁과 공공요금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들, 낮은 출생률과 높은 고령화, 실업과 불황의 증가 등 산적한 갈등이 가득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단락돼 가지만 더 큰 풍파가 기다립니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희망이 무엇이냐며 자조했듯 희망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 모든 선한 이들에게 전해진 편지
냉전기인 1963년 4월 11일,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와 그를 위해 필요한 의무들을 언급하며 평화를 위한 일들을 서술한 회칙입니다. 특이한 점은 이 회칙이 가톨릭신자만이 아니라 선의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회 안에서 진리, 정의, 사랑, 자유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형성하라고 당부한 최초의 문헌이라는 점입니다.
선의를 사랑하고 실천하려는 이들을 통해 갈등과 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가능할 것임을 내다본 것입니다. 이 회칙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이 세상과 타인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합니다.(30항) 그 의무 중에는 적극적 사랑의 실천, 책임감 있는 형제애도 포함됩니다.(34항) 단순히 누군가의 괴로움을 공감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해결을 위해서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오늘날은 인권과 권리가 많이 신장된 시대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맡겨진 의무를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잊고 살지는 않나 성찰합니다. 이웃과 원수마저 사랑함이 그리스도인의 삶일진데 저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나만을 위해, 나의 풍요로움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가치 있는 삶일까요? 살아보니, 삶은 덧없고 유한하다는 상념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일만을 일삼은 것에서 오는 후회입니다. 그러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한 이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회심을 촉구하는 사순 시기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과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후회 없는 삶, 더욱 사랑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실제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려면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능력과 그의 끊임없는 내적 회개가 필요하다. 마음의 회개에 최우선을 두는 것은 죄를 유발시키는 제도와 생활 여건을 적절히 개선할 의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제도와 생활 여건들은 정의의 규범에 맞아야 하고, 선에 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이 되도록 개선되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