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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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사순 제1주일 - 다시 한번 그분께로 거슬러 올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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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사순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사순 시기만 돌아오면 이런 생각하는 분들 많을 것입니다. ‘나도 제대로 회개 한번 해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잘 안되지?’ ‘생각으로야 수천 번도 더 회개하고 싶지, 그러나 몸이 안 따라주는 걸 어떡해?’

회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회개란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마땅합니다. 성경에 사용된 회개란 용어는 히브리어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입니다. ‘악한 생각과 행동에 대항하다’, ‘자신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목표를 설정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니 회개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군요. 단순한 반성의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가슴 몇 번 치는 일이 아닙니다. 성당에 앉아 눈물 몇 방울 흘리는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꽤 복합적인 여정입니다. 제대로 된 회개를 위해서는 성경적 의미대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한없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누가 계십니까? 거기에는 사랑이신 우리 하느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그분은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와 온전히 결속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항상 머물러계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제대로 된 회개를 위해서는 ‘나’란 존재의 신원에 대한 명확한 파악도 필요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원래 무(無)였습니다.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황공하게도 하느님께서는 이런 내게 당신 사랑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부여해주셨습니다. 당신의 영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분 덕분에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분의 품성과 영혼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먼지요 티끌이었던 내가 놀랍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났고, 그분이 보내셔서 이 세상에 왔으며, 그분의 은총에 힘입어 오늘도 두 발로 서있습니다. 그분 자비 덕분에 이렇게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다시 한번 그분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쁜 마음으로 우리 삶의 기초이자, 우리 인생의 시초인 그분께로 다시 발길을 돌립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본모습입니다.

우리도 성령과 함께 광야로 들어갑시다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으로 가득 차 돌아오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거칠고 황량한 유다 광야로 들어가십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한 우리도, 스승 예수님을 따라 깊고 황량한 광야,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고 춥고 배고픈 광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 광야로 들어갈 때는 다른 해처럼 준비 없이 들어가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가득 차고, 성령에 이끌려, 성령과 함께 광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우리들 생애 안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사순 시기가 많은 경우 실패로 끝난 이유는, 주님 없이, 성령 없이, 내 힘만 믿고, 나 홀로 광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광야 생활이라는 것,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한낮에는 피할 곳도 변변치 않은데, 엄청난 더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합니다. 밤이 되면 기온은 또 얼마나 내려가는지 모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100퍼센트 인간 조건을 그대로 지니셨던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허기와 갈증은 또 얼마나 극심했을까요? 어쩌면 그분께서는 언젠가 겪게 될 골고타 언덕에서의 극심한 십자가 죽음의 고통을 광야에서 미리 맛보셨던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의 광야인 이번 사순 시기, 여느 해처럼 갖은 고통과 시련, 세찬 모래바람과 극한 체험으로 가득하겠지만, 성령과 함께라면 큰 문제없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여행길에 밀착 동반하신다면, 광야 생활 결코 외롭거나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맞이한 사순 시기 우리 앞에 펼쳐질 광야는 어디일까요? 나와 너무나도 다른 그, 정말이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용납이 안 되는 그가 득실거리는 우리의 공동체가 광야입니다. 평생토록 혼신의 힘을 다해 한번 벗어나 보려고 그토록 발버둥쳐 봤지만, 그 지독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복되는 내 악습과 결함이 광야입니다. 게으름과 나태함, 갖은 유혹 거리로 가득 찬 내 부끄럽고 참혹한 매일의 일상이 광야입니다. 바로 그 광야에서 주님과 함께, 성령과 함께 새 출발을 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혹 극복의 비결

오늘 복음은 40일간 단식해 오신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기도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 조건을 지니셨던 인간이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통과 배고픔을 똑같이 겪으셨던 참 인간이셨습니다.

휴가지에서 40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만, 단식하면서 보내는 40일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입니다. 허기가 져서 거의 탈진상태에 도달한 예수님 앞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갖은 감언이설과 달콤한 유혹거리를 미끼로 내세우며 예수님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의연히 이겨내십니다. 허탈해진 악마는 힘을 잃고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 앞에 끝까지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아버지께 대한 항구한 충실성과 철저한 순명, 아버지를 향한 지속적 신뢰와 끊임없는 자아포기, 그 결과가 유혹의 극복이란 결실을 가져왔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 현존 안에 뿌리내림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세상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예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께 대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걸어가는, 사순절이라는 광야 여정에는 악마로부터의 유혹도 많겠지만, 든든하신 우리 주님께서 언제나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맙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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