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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동참하며 이웃 사랑 실천

[가톨릭 영상 교리] (44) 금식재와 금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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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의 수요일을 맞아 메릴랜드주에 있는 교회에서 신부가 한 아이의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고 있다. OSV

 

 


“모든 신자는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자신과 이웃들의 각종 죄악을 보속하는 정신으로, 매주 금요일에는 금육재를 지키고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켜야 한다.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킴으로 절약된 몫은 자선 사업에 사용하도록 한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36조 1-2항)

금식재와 금육재 많이 들어보셨죠? 많이 들어보셨을 뿐만 아니라 잘 지키고 계신가요? 혹시 그동안 잘 못 지키셨다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를 주의깊게 봐주세요.

오늘은 금식재와 금육재 이야기입니다. 먼저, 금식재는 하루 중 한 끼를 금식하는 것이고, 금육재는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인데요. 다들 아시다시피 평상시에 늘 하는 게 아니고 정해진 날에 하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언제’ 하는지 살펴보면요. 연중 기간에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요일인 ‘금요일’, 그러니까 매주 금요일에 금육재를 지키고,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금육재뿐만 아니라 금식재도 함께 지킵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수난에 동참하고, 우리와 이웃들이 지은 각종 죄악을 보속하고,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죄와 욕정의 사슬을 끊고,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절약한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금식재와 금육재는 가톨릭 신자라면 꼭 지켜야 할 의무 중의 하나입니다. 정기적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하고, 규칙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을 향하도록 바로 잡게 하기 때문입니다. 금육재로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금식재로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날까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금식재와 금육재는 언제, 또 왜 시작됐을까요? 초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는 오늘날처럼 부활절과 부활 사건을 기리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었습니다. 이에 맞춰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고행을 실천하며 영적인 준비를 한다는 의미로 부활 축일 전 하루나 이틀 동안 단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신 것을 따라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40일 동안 단식하는 사순절이 생겼습니다. 금식은 본래 그날 한 끼만 제대로 식사하는 것이었는데요, 거기에 육식과 술을 금하는 금육 규정이 추가됐습니다.

금식재나 금육재는 부활 준비와 자선이라는 좋은 의도이긴 하지만 시대와 지역, 개인의 상황에 따라 고려가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6년부터 한 끼의 식사는 충분한 양을 섭취하도록 하고, 아침과 저녁 식사도 가볍게 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것으로 속죄와 금식의 규정을 완화했습니다. 그러면서 적절하고 효과적인 규정은 각국의 주교회의에 맡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금식과 금육 규정의 완화가 ‘재를 지킴’의 폐지, 또는 의미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에 맞는 절제와 극기를 통해 ‘금식과 금육의 재 지킴’의 근본정신을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연중 금요일에 지키는 금육재는 금육이나 금주, 금연, 선행, 자선, 희생, 가족 기도로 지킬 수 있습니다. 한편 금식재와 금육재를 통해 절약된 몫은 자선 사업에 사용합니다. 단순히 금식과 금육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절제를 통해 절약한 것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데 그 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금식재와 금육재는 참회의 정신으로 극기를 실천하여 내적·외적으로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며, 절제의 미덕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실천’, 즉 자선은 무엇일까요? 자선은 이웃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 내가 가진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기에 그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 역시 이웃 안에 현존하시는 그분께 내가 받은 것을 되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선은 억지로 노력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충만함으로 저절로, 기꺼운 마음으로 감사와 기쁨과 찬미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 베풀면 베풀수록 풍요로워진다는 깨달음을 얻게 해주소서. 제가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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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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