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양아버지이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에 대해서는 마태오 복음 1―2장과 루카 복음 1―2장에서 나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다 지방 베들레헴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요셉은 갈릴리 지방 나자렛에 살면서 목수 일을 하고 있었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했으나 같이 살기 전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잉태한 마리아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이 시대 풍습으로는 정혼한 이가 아닌 다른 이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기 전에도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지 않고 싶어 했습니다. ‘의롭다’는 요셉의 평판은 그가 법을 어기지 않고 충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마리아의 일을 법대로 처리하지 않고 남몰래 이혼하려고 했던 것은 친절하고 자비로운 성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고, 율법대로 할례를 베풀고 정결례를 행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의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왕인 메시아가 태어난 것을 두려워한 헤로데 임금은 영아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라고 말해 줍니다. 요셉은 아기 예수님과 마리아를 지키기 위해 이집트로 갔고, 헤로데가 죽은 뒤에야 가족을 데리고 나자렛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12살이 되던 해에는 매년 하던 대로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을 다녀오다가 아들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을 찾기 위해 다시 돌아간 요셉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발견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후 요셉은 루카 복음 4장 22절을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전 선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외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서」에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했을 때 이미 노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요셉에 대한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외경 「요셉 이야기」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인기 서적이었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주님의 양부’라는 칭호로 9~10세기 일부 지역에서부터 시작해 ‘마리아의 배필’로서 성모님 공경과 함께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12세기쯤에는 3월 19일이 축일로 정착됐습니다. 14세기에는 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를 중심으로 요셉에 대한 공경과 축일이 전파되다 1479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성 요셉 축일이 전 교회로 확대됐습니다.
요셉에 대한 신심은 특히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와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에 의해 보편화됐습니다.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셉을 ‘가톨릭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9년 요셉을 가장(家長)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모님 다음의 위치로 올렸습니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베네딕토 15세 교황이 부여했습니다. 비오 11세 교황은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해서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요셉은 임종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교회 미술에서 요셉은 일반적으로 백합꽃이 핀 지팡이 또는 목수 일에 필요한 연장을 들고 있거나, 아기 예수님을 안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