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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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사순 제5주일 -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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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총애를 받은 라자로의 죽음과 마르타의 슬픔

우리에게도 그러하듯이 예수님께도 유난히 절친했던 가족이 있었으니, 친구 라자로와 그의 누이들, 마르타와 마리아였습니다. 본격적인 복음 선포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노숙도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때로 심한 허기에 시달리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는 엄청난 식욕의 소유자들인 제자들을 이끌고 그들의 집을 자주 방문하셨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예수님을 비롯한 장정들을 위한 손님맞이의 총 책임자는 마르타였습니다. 그들이 예고도 없이 대거 방문할 때마다 마르타는 즉시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엄청나게 먹고 마셔대는 제자들을 위해 그녀는 빵을 굽고 또 구웠습니다. 하루 온종일 지지고 볶았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마르타는 한 사흘씩 앓아 누울 정도였습니다.

음식 솜씨도 좋고 마음씨도 착했던 마르타는 언제나 예수님과 제자단을 극진히 환대했습니다. 늘 기쁜 마음으로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틈만 나면 찾아오고, 엄청나게 먹어대니, 어느 순간 마르타의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한번은 얼마나 힘들었던지, 마르타는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따지기까지 했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 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루카 10,40) 예수님께서는 이런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그의 오빠 라자로를 각별히 사랑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요한 11,5)

그런데 한번은 마르타가 예수님의 처신에 크게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오빠 라자로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 급히 좀 와주십사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요한 11,3)

마르타는 평소 자신의 가족이 한 마음 한 몸으로 합심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기울였던 봉사와 희생, 그간 쌓아온 각별한 친분과 우정을 생각했을 때, 만사 제쳐놓고 즉시 달려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웬걸!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께서 오지 않으셨습니다. 인연도 관련도 없는 다른 사람들은 다 치유시켜 주시면서, 보통 인연이 아닌 오빠 라자로는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놔두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한 마르타는 솟아오르는 화를 겨우 눌러 참으며 오빠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조차 지배하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후 예수님께서 도착하신다는 말을 전해들은 마르타는 즉시 달려가서 볼멘소리로 따졌습니다. 오빠의 죽음에 대한 깊은 슬픔과 꼭 필요한 순간 적절히 개입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늑장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21)

그러나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굳게 결속되어 계시는 분이시고, 그분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그분께서 허락하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마지막 기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낱같은 희망을 마음에 품고 예수님께 아룁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오빠를 향한 마르타의 사랑이 참으로 애틋합니다. 예수님의 신원과 그분의 능력을 향한 마르타의 믿음이 참으로 깊습니다. 이런 마르타의 마음을 갸륵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외치십니다. “네 오빠는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향한 마르타의 믿음은 100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4)

“네 오빠는 살아날 것이다”라는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라자로의 부활뿐만 아니라 종말의 부활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마르타는 마지막 부활로만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종말 부활 신앙은 예수님 시대 당시 이미 군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마르타의 반응은 그러한 시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2 부족한 마르타의 부활 신앙을 일깨워주시고 채워주시기 위해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예수님 당신 자신이 부활의 원동력이며 부활 그 자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은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은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한없이 부족한 우리들의 부활 신앙도 예수님께서 일깨우시고 채워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그분만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예수님 그분만이 우리 생의 전부임을, 예수님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임을 온몸과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라자로는 적당히 죽은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장례까지 치렀습니다. 염을 했고, 무덤에 묻었고, 바위로 봉하기까지 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신이 부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라자로가 소생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죽음조차 지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돋보이는 복음입니다. 죽었던 사람도 일으키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썩어가는 시신을 일으켜 세우시는 재창조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생명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부여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생명 자체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가게 이끄시는 관문이십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삶의 이정표로 삼는 수밖에 없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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