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성인은 원래 목수 또는 제화공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25살이 되던 해 가까운 산으로 가 은수자가 되어 40년간 살았습니다. 요한과 함께 살던 고령의 은수자는 그를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1년 내내 마른 나무에 물을 주라는 등 엉뚱한 명령을 했습니다. 요한은 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40세쯤 됐을 때엔 자신이 태어난 이집트의 리코폴리스 근처에 있는 바위 꼭대기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해가 진 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매우 검소한 삶을 보냈습니다. 주중에는 기도를 했으며, 토요일과 주일에는 그의 가르침과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모여든 이들에게 집에 난 작은 창을 통해 가르침을 주곤 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집 근처에 병원과 비슷한 종류의 숙박시설을 짓게 하여 방문객들을 돌볼 수 있게 했습니다. 방문객들은 요한의 치유와 예언의 은사, 마음을 읽는 능력 등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예언에 관한 요한의 은사는 ‘테베의 예언자’라는 호칭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한 번은 383년 그라티아누스 황제를 죽이고 4년 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를 폐위시킨 폭군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를 공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테오도시우스 1세는 요한에게 막시무스와의 전쟁에 대해 자문을 구했습니다. 요한의 자문을 받은 테오도시우스 1세는 자신감을 가지고 서쪽으로 행진해 판노니아에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막시무스의 군대를 두 번이나 물리쳤습니다. 나아가 알프스를 넘어 아퀼레이아에서 막시무스를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테오도시우스 1세는 “이 승리는 요한의 기도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습니다.
392년 또 적의 침략을 받은 테오도시우스 1세는 사람을 시켜 요한을 데려오게 시켰습니다. 만약 요한이 오지 않겠다고 하면, 직접 자문을 구해오도록 했습니다. 적에 대항해 진격해야 하는지, 아니면 동쪽에서 적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거처를 떠나지 않고, 테오도시우스 1세의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다만 “이번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며 “테오도시우스 1세 또한 이탈리아에서 숨을 거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테오도시우스 1세는 적을 향해 진격했고 첫 전투에서 약 만 명의 군사를 잃었습니다. 패색이 짙었지만, 다음날 전투에서는 하늘의 기적적인 개입에 의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는 395년 자신의 두 아들을 동서 로마의 황제로 남기고 서로마 제국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요한은 죽음을 앞두고는 자신의 앞날을 예견한 뒤 마지막 3일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기도를 하다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요한에 대한 명성은 사막의 교부이자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토니우스 성인에 버금갑니다. 동시대 사람인 히에로니무스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 요한 카시아누스도 요한을 칭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