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에타노 카타노소 성인은 이탈리아 남부 메시나 해협에 있는 항구도시, 레지오 칼라브리아에 있는 코리오 디 산 로렌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8명의 자녀를 둔 부유한 지주이자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가에타노는 1902년 9월 20일 사제품을 받고, 1904년부터 17년간 펜티다틸로의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에 대한 지대한 신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안’이라는 회보를 만들었고, 1920년에는 ‘성안회’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가에타노는 생전 “그리스도의 성안은 나의 인생”이라며 “그분은 나를 강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1921년 2월 가에타노는 산타 마리아 데 라 칸델라리아의 본당으로 이동해 약 20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매우 다재다능한 그는 본당에서 평화롭고 부지런히 봉사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성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가에타노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제한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그리스도와의 더욱 깊은 일치를 위해 노력했고, 사목적 배려에 맡겨진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하느님 뜻을 기꺼이 수행했습니다.
사실 그는 시골에 있던 펜티다틸로 본당에서 사목하는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규모가 큰 칸델라리아 본당으로 발령받았을 때, 전혀 우쭐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부임하고 나서는 신앙의 활력을 주는 성체성사와 성모신심으로 신자들을 적극 인도했습니다. 또 교리교육을 장려하면서 신성모독과 축일들의 남용에 반대하는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가에타노는 사제로서 자신의 의무는 자칫 타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많은 어린이와 젊은이, 소외된 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받는 모든 이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한 겁니다. “버림받은 고아들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합니다. 도처에는 너무나도 많은 위험과 비참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버림받은 어린이와 젊은이에게 우리의 시선을 돌립시다. 오늘날의 인간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윤리적으로 병들었습니다.”
그는 또 폐허 직전의 방치된 성당과 감실들을 복구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가에타노는 종종 감실 앞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본당 안팎에서는 성체조배를 장려했습니다. 전문적인 사제모임을 구성하고, 강론과 고해성사를 통해 신자들의 요구에 즉시 응답하며 본당 사목을 돕기도 했습니다. 1921년부터 1950년까지는 종교 기관과 레기오 칼리브리아의 교도소에서 고해신부로 활동했습니다. 병원 원목신부와 대신학교의 영적 지도자로서도 봉사했습니다.
1934년 가에타노는 ‘성 베로니카 딸들 수도회(성안의 선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 수도회는 항구한 보속의 기도, 겸손한 봉사, 교리교육, 어린이·젊은이·사제·노인들에 대한 원조를 그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에타노는 1963년 4월 4일 모범적인 삶을 마치고 평화로이 선종했습니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고, 2005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