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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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부활 제3주일 -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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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 눈이 활짝 열리게 될 때 얻게 될 은총

전통적으로 저희 수도자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 다음날 엠마오 소풍을 떠납니다. 저희 공동체도 오랜만에 서해를 떠나 동해로 엠마오 소풍을 갔었는데, 강풍으로 인한 산불에, 엄청난 황사에 생고생만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와중에도 호젓한 산길을 홀로 걸으며 주님과 함께 길을 걸은 두 제자의 은혜로운 체험을 잘 묵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클레오파스라는 제자와 다른 한 제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등장하셨지만, 두 제자는 예수님임을 알아 뵙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두 제자의 눈이 뭔가에 가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제자의 눈을 가린 가림막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스승님 죽음으로 인한 낙담과 좌절, 그리고 부활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걸어가십니다. 길을 걸어가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기도 하고, 성경 전반에 걸쳐 가르치시기도 하고, 그렇게 몇 시간을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예수님께서 두 제자만을 위한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질문도 던지시고, 그에 대한 토론도 나누시고, 답변도 해주십니다. 두 제자의 무지와 불신에 다그치기도 하시고, 격려하기도 하십니다. 구약의 예언서에 대해 자상히 설명도 해주시고,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소상히 가르쳐주셨습니다.

두 사람만을 위한 말씀의 전례가 끝날 무렵, 날이 저물고 해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두 제자는 한 숙소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드디어 성찬의 전례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빵을 떼시는 순간, 두 제자의 눈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바로 당신 앞에 계신 분이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스승님께서는 홀연히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홀연히 사라지신 후 두 제자의 고백이 의미심장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우리 역시 매일의 미사 중에 말씀의 전례 가운데 온몸과 마음으로 정성껏 말씀에 몰입할 때, 자연스레 우리 마음은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제자처럼 뜨거워질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인해 뜨거워지고 열렬해진 우리 마음을 안고 성찬의 전례로 넘어갈 때, 우리는 빵과 포도주 안에 생생히 살아계시고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뵙지 못하도록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장애물은 어떤 것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언젠가 우리 눈이 활짝 열리게 될 때 얻게 될 영적 은총은 어떤 것인지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우리 눈에 어두운 장막이 걷히게 될 때,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것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죽어가면서도 행복한 얼굴로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절하고 자상한 동반의 달인이신 예수님!

엠마오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친절하고 자상한 동반의 달인이십니다. 아직 눈을 못 뜬 미성숙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배려를 한번 보십시오. 스승 부재 상태에서 큰 상실감과 혼란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먼저 예수님께서 다가서십니다. 무얼 그리 고민하고 있는지 먼저 물어봐 주십니다. 무지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다그치지 않으시고 하나하나 자상하게 설명해주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 머무시려고 집에 들어가십니다. 식탁에 앉으셔서는 그들에게 손수 빵을 떼어 나누어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자상함과 친절이 지나칠 정도여서 제자들이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짧은 여행길이 얼마나 감미로웠던지, 제자들은 마치 천국의 오솔길을 걷는 듯 했습니다. 그 만남이 마치 짧은 봄날처럼 너무나 아쉬웠던 그들이었기에 예수님께 간절히 청했던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이런 예수님의 친절과 지극정성과 배려는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 감동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의 눈을 뜨게 만들고, 그들의 눈을 열어주며, 마침내 예수님을 알아 뵙게 만듭니다. 마침내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 뵌 그들은 그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상처 입은 영혼들이 너무 많은 이 세상입니다. 외로움에 절망감에 홀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요즘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자상한 영적 동반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그치지 않고, 너무 앞서가지도 않고, 자상하게 일러주면서, 일으켜 세우면서, 다시금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갈 힘을 줄 동반자, 많은 새들이 거처로 삼는 넉넉하고 큰 나무 같은 동반자가 되어 줘야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빵을 떼어 나눠주실 때, 우리 앞에 확연히 동반자로 나타나십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 우리가 거행하고 참여하는 성체성사 안에서 꾸준히 당신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성체성사가 좀 더 잘 준비돼야겠습니다. 좀 더 경건하고 깨어있는 태도로 임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체성사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다가오시고, 영성체를 통해 우리 눈이 열려 주님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크신 하느님께서 매일 내게 다가오신다는 것,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내 인생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신다는 사실,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하느님께서 다정한 친구의 모습으로 매 순간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신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듯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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