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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한 유다인들, 성전 짓고 믿음을 새롭게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3)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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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는 예루살렘 재건 시기 유다교를 율법 중심으로 개혁한 사제이다.

신바빌로니아는 키루스 임금이 이끄는 페르시아인들의 침입으로 기원전 539년 멸망합니다. 키루스 임금은 티그리스 강가 오피스(오늘날 바그다드)에서 단 한 번의 승리로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대 제국을 건설합니다.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바빌론으로 입성한 그는 복속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우호 정책을 폅니다.

키루스 임금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다인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러나 해방령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다인은 그대로 바빌론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집도 있고 생계를 꾸릴 일자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런 간섭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달리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충실했던 사람들과 고향을 그리워한 이들은 고국으로 귀환합니다. 유다 제후 세스바차르는 키루스의 명을 받고 유다인 4만 2360명, 그들의 남녀 종 7337명, 음악가 200명 등 총 4만 9897명을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그는 키루스 임금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기물도 되돌려받았습니다.(에즈 5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 중에는 즈루빠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도카이, 빌산, 미스파르, 비그와이, 르훔, 바아나가 있었습니다.(에즈 1─2장)

귀환자의 지도자 역할을 한 이는 바로 즈루빠벨이었습니다. 그는 고국에 돌아온 이들과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착수합니다. 이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겨우 준공해 봉헌합니다. 그것도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질타하며 독려했기에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성전 건립 공사가 더뎠던 까닭은 사마리아 귀족들의 반대로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중지시켰기 때문입니다.(에즈 4,6-7; 23-24) 그러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임금이 바빌론 문서고에서 키루스의 칙령을 발견한 후 성전 재건 공사를 다시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과 유배를 가지 않고 그대로 고국에 남아 있던 이들 간의 땅 소유 문제로 충돌이 잦았습니다.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는 사제와 귀족, 지식인, 기능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후 그들의 땅을 유배 가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50년이 지난 후 고향으로 되돌아온 이들이 땅 소유를 주장하니 분쟁이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국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은 다른 종족들과 혼인해 이교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유배지에 끌려가 냉대를 받으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지켜온 귀환자들에게 이들은 이방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봉헌한 성전은 솔로몬 성전만큼 화려하진 못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 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 성전을 ‘제2 성전’이라 부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이스라엘 민족의 첫 번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2 성전 시대’라고 표기할 경우는 제2 성전을 봉헌한 기원전 515년부터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까지를 지칭합니다.

페르시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임금의 술 시중 담당이었던 느헤미야가 기원전 445년 유다의 제후 곧 지방관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야훼께서 위로하시다’는 뜻인 그의 이름처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로가 되어줄 예루살렘 재건에 힘씁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다시 쌓고 요새화했습니다. 그는 또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유다인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규칙을 제정해 사회 개혁을 단행하고, 백성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인구 조사도 시행했습니다.(느헤 7장, 11장 참조) 느헤미야는 약 10년 동안 예루살렘을 통치합니다. 그후 페르시아로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 재건 시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즈라입니다.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그는 율법 중심으로 유다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재조직했다면 에즈라는 유다교 쇄신을 주도했습니다. 에즈라는 느헤미야의 후원으로 공적인 신앙 집회를 열고 많은 유다인들을 모아놓고 율법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말을 잊어버린 이들을 위해 협력자들이 아랍어로 통역해 주었습니다. 에즈라는 온종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을 근거로 하느님의 백성다운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민족과의 혼인을 금하도록 설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즈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민족 아내를 내보고 안식일과 십일조를 열심히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국가도 아니고 제의 공동체도 아닌 오직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에즈라를 ‘제2의 모세’라고 칭송합니다. 신앙적으로 완전히 죽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율법을 통해 다시 일어서게 했다고 했기에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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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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