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에서 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한 가롤로 르왕가 성인과 요셉 무카사 성인을 포함한 22명의 순교자들은 일명 ‘우간다의 순교자들’로 불립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우간다 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들이 순교한 뒤 얼마 후 우간다에서는 500명 이상이 주님의 자녀가 됐고, 3000명 이상의 예비신자가 나왔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어떻게 내려지는지 알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중앙아프리카 내륙 지방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처음으로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한 때는 1879년입니다. 알제리 교회의 라비제리 추기경이 중앙아프리카를 선교하기 위해 설립한 ‘화이트 파더’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처음엔 가톨릭교회에 호의적이었던 우간다 무테사 추장의 도움을 받아 선교활동과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가롤로 르왕가는 1860년쯤 우간다의 부두 카운티에서 태어나 마울루궁구 추장의 두 시종에게 가톨릭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는 1884년 부간다 카바카 왕궁의 시종장이자 열심한 신자였던 요셉 무카사의 조수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무테사 추장의 후계자가 된 무왕가는 부족 가운데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뿌리뽑고자 했습니다. 그중에는 부하인 요셉 무카사도 있었습니다. 이에 추장이 된 무왕가는 1885년 11월 박해의 첫 희생자로 요셉 무카사를 참수형에 처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날 밤 가롤로 르왕가는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요셉 무카사의 지위를 승계한 가롤로 르왕가는 사제들과 연락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왕가 추장의 잘못된 요구로부터 시종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용기를 북돋웠고, 위기의 순간이 다가올 땐 예비신자 4명에게 몰래 세례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때 세례받은 이들 중엔 13살 소년이었던 키지토 성인도 있습니다.
1886년 5월 다시 시작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이듬해까지 이어졌습니다. 무왕가 추장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성공회 신자들까지 색출해 잡아들였습니다. 가롤로 르왕가와 신자가 된 시종들은 당당히 신앙을 고백하다 체포됐습니다. 체포된 이들은 처형지까지 끌려가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처형장에서는 옷이 벗겨진 채 꽁꽁 묶였습니다. 사형 집행자들은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괴롭히다가 그들을 천천히 불태워 죽였습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인 6월 3일 벌어진 일입니다.
마티아 무룸바 성인은 이들보다 조금 앞선 5월 하순쯤 동료들과 함께 순교한 인물입니다. 처음엔 개신교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결국 리빈하크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동료 순교자로는 키고와의 추장인 안드레아 카그와 성인이 있는데, 그는 아내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 주위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요셉 무카사 이후 1887년 1월 말까지 추장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한 많은 신자가 잔인한 고문을 받고 화형이나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22명의 우간다 순교자들은 1920년 6월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습니다. 그리고 1964년 10월 로마에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우간다의 순교자들’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가롤로 르왕가는 1934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아프리카의 젊은이들과 가톨릭 운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