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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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21. 꼬미 밤마실 돗자리 영화관/사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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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마을 광장 왼쪽 경계선은 동비댁 창고 패널로 된 담벼락이다.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곳이라 온갖 광고물을 붙이는 벽보처럼 되었다. 한여름 땡볕 아랫마을 청년 몇 사람이 광고물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물청소한 후에 파란 페인트를 칠했다. 온 마음이 맑아지고 또 하나의 하늘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 현장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팔구십 어르신들이 여름밤마다 영화를 함께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미리 생각했으면 스크린이 될 만한 곳에 흰색을 칠했을 텐데,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무엇으로 스크린을 만들까 고민하는데, 이장님이 쓰고 남은 현수막을 주시겠다고 했다. 글자가 쓰여있을 텐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창고 벽 앞에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자기 집에 희고 긴 천이 있다고 했다. 얼른 가서 천을 2m 잘라와 벽에 고정했다. 이 정도면 영화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영화관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마을 이름을 따서 ‘꼬미’, 이 영화는 밤에만 볼 수 있으니 ‘밤’, 여기저기 다닌다는 ‘마실’도 떠올랐다. 어릴 때 멍석에 앉아서 별도 보고 달도 보고 밥도 먹고 놀기도 했으니 ‘멍석’, 요즘은 멍석이 없으니 ‘돗자리’, 꼬미마을 주민도 자유로운 만남의 상징으로 돗자리가 좋을 것 같다. ‘꼬미 밤마실 돗자리 영화관’. 영화관 이름이 좀 길긴 하지만, 몇 사람한테 물어보니 좋다고 했다.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후배가 영화 필름 모양의 테두리로 영화관 이름을 인쇄한 후 코팅을 해왔다. 긴 사다리를 놓고 영화관 간판을 붙였다. ‘우와~.’ 명실공히 꼬미 동네에 영화관이 생겼다. 그날의 소확행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빔프로젝터는 후배가 갖고 오기로 했다. 영화관 시사회를 하자. 첫 영화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이 깊어졌다. 글을 읽을 줄 아시더라도 자막 보기가 어려운 분들이 계시니 한국 영화 중에 이분들에게 어울리는 영화를 찾아야 한다. 이 세대의 고민을 그린 ‘수상한 그녀’가 당첨됐다.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은 할머니가 서운한 마음에 집을 나와 사진관에서 영정 사진을 찍은 후, 갑자기 아가씨의 모습으로 변신한 자신을 보는 내용이다.

영화 상영 전날 밤, 돗자리가 있긴 하지만 행여나 싶어서 기획팀에서 십여 년 묵혀둔 의자 20여 개를 물청소했다. 그동안 배운 캘리그라피로 영화 안내판을 만들고, 마을 광장을 빗자루로 쓸고, 집에 있는 큰 돗자리 두 개를 길게 펴놓았다. 상영 당일 영화관 분위기를 낸다고 후배가 팝콘이랑 음료를 사왔다. 이제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상영 시간이 오후 7시 반이라고 알려드렸는데, 아직 날이 밝아서 스크린이 보이지 않는다. 여름날은 오후 8시는 되어야 영화를 볼 수 있다. 아뿔싸! 어르신들이 다리가 아파서 돗자리에 앉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급히 의자를 갖다 날랐다. 돗자리는 텅 비었고, 모두 의자에 앉으셨다.

영화의 첫 상영이 끝났다. 어떠시냐고 여쭈었더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이고,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전개가 빨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로써 첫 영화는 고객들의 관심과 재미를 끌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어르신들이 당신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데 감사하고 고마워하셨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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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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