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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자녀로 태어난 그때를 기억하자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3) 세례 때의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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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맏딸 프랑스여, 당신은 세례 때의 서약을 어떻게 하였습니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80년 6월 프랑스에 도착하며 프랑스인들 앞에서 강론 중 하신 말씀이다. ‘교회의 맏딸’이라 불릴 정도로 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프랑스, 하지만 세속화 물결 속에서 신앙의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당시 프랑스 교회에 던지신 이 질문은 많은 프랑스 신자들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교황님의 이 질문은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세례 때의 서약을 어떻게 하였나? 각자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세례 예식을 잠시 떠올리는 것도 좋겠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세례 때를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르겠다.

세례 때 예비신자는 먼저 자신이 하느님의 교회에 신앙과 영원한 생명을 청한다는 의향을 표명한다. 대부모에 의한 세례 후보자의 소개가 끝나면, 사제는 구마 기도 후 예비신자의 앞 목에 예비 신자 성유를 바른다. 이어서 세례 예식이 거행되는데, 세례수 축복이 끝나면 예비신자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신자와 함께 죄와 악의 유혹과 마귀를 끊어 버린다고 서약하며, 성부, 성자, 성령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물로 씻는 예식을 통해 후보자는 모든 죄의 씻김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다. 이어서 주례자는 새로 태어난 영세자에게 구원의 축성 성유를 바르며 이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청하며 기도한다. 새 영세자는 새로이 창조되어 그리스도를 입었음을 의미하는 표시로 흰옷을 받아 입고, 그리스도의 빛을 전해 받는 의미로 대부모로부터 촛불을 건네받는다.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세례 예식이 마무리된다.

사람마다 그 기억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세례는 분명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례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큰 사건인지를, 세례로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며 새로 태어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인지를,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빨리 잊은 것은 아닌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앞의 강론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늘 새롭게 시작되며, 세상에 탄생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시작된다고 하셨다. 세례는 바로 그러한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각자의 삶 안에 실현되도록 하는 성사이며 관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된 그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또한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고유한 신앙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놀라우신 섭리로 각자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당신 자녀가 되는 길로 인도하시며, 당신 자녀를 끝까지 동행하신다.

“우리는 세례 때의 서약을 어떻게 하였나?” 이 질문은 다만 세례 때를 떠올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세례와 함께 시작된, 아니 세례 전부터 이미 시작된 하느님과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기억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그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새로 태어나는 세례는 한순간의 예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 매 순간 새롭게 실현되며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길을 용기를 갖고 계속해서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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