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코로나 시기, 우리는 어떻게 답답했던 그 시기를 보냈을까? 백신도 치료제도 없고, 밑도 끝도 알 수 없던 절망스런 시기, 어떤 이는 원망 어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고, 어떤 이는 ‘테스형’을 부르며 시름을 달랬을지 모르겠다.
미사가 재개되었을 때 가장 기뻤던 것은, 성당에서 미사를 다시 봉헌할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미사를 함께 봉헌할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리워했던 것은 미사만이 아닌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공동체였다. 그 공동체란 하느님을 같은 ‘아버지’로 부르며, 서로를 하느님 아버지의 같은 자녀인 ‘형제님’, ‘자매님’하고 부르는 공동체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자녀로 태어나, 공동체 안에서 양육되고 공동체 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일곱 가지 성사는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고(세례) 성인이 되게 하며(견진) 사랑으로 양육하고(성체) 상처 입은 우리를 치유해주고(고해, 병자)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게 하도록 하는데(혼인, 성품), 모두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지상의 생을 마감하고 하느님 품으로 가는 순간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마지막까지 배웅해주는 것도 공동체다.(장례 미사)
이 공동체는 사회에서 만나는 여느 공동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의 사정을 살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공동체다.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며, 남이 아닌 자신에게 탓을 돌리는 공동체다. 비록 인간적인 결함이나 나약함과 한계로 고통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 사랑 안에서 계속해서 자라나는 공동체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박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공동체 신앙을 사셨고, 바로 그 공동체 신앙을 우리에게 전수하셨다. 그분들이 남겨놓은 교우촌 공동체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종종 자문한다. 왜 그분들은 박해에도 위험을 피해 홀로 신앙생활 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며 사셨을까? 그리하여 혹독한 박해를 받고 순교로 삶을 마감했을까? 선조들께서 남기신 증언은 우리에게 답한다. 가족과 터전을 잃고 방랑 생활을 해야 했을 때, 우여곡절 끝에 만난 신자들 서로가 서로에게 큰 기쁨과 희망이 되었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나눈 신앙생활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그리스도 신앙은 공동체 신앙이다. 그리스도 신자에게 공동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장)에 나오는 작은아들처럼, 혹여나 아버지와 공동체를 떠나 살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궁핍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돌아오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모든 이가 공동체로 돌아오거나, 공동체가 그를 찾아갈 것이다.
며칠 전 집안의 76세 되신 6촌 형님께서 별세하셨다.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자성사를 드리러 찾아갔는데, 기력이 쇠하고 의식이 거의 없었음에도 필자를 알아보시고는 “아이고, 이게 얼마 만이여” 하고 반기시며, 이내 고백하신다. “내가 죄가 많아.”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시며 병자성사를 받으셨다. 그 자리에는 형수님과 형님 소속 본당 봉사자가 함께 모여 기도를 드렸다. 형님은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셨고, 다음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본당 공동체 신자들과 함께 장례 미사를 봉헌하였다. 오랜 냉담 끝에 결국 형님은 공동체 안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코로나 이후 새롭게 시작하는 신앙, 자신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나에게 신앙 공동체란?”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