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신앙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친구의 손에 이끌린 신앙, 천주교 신자인 배우자를 만나 갖게 된 신앙 등 그에 대한 답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우리의 얼굴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인생살이처럼, 우리의 신앙 여정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걷는 신앙 여정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 신앙이 수많은 신자의 손을 거쳐 나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혹자는 자기 스스로 성당을 찾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살면서 천주교 신자와 접촉이 한 번도 없었다면 어떻게 스스로 성당에 갈 마음이 들었겠는가.
어떤 지인께서 말씀하셨다. “신부님, 저는 원래 종교가 없었는데요, 면사무소에서 신부님 아버님과 함께 근무하면서, 언젠가 종교를 갖게 되면 꼭 천주교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가족은 천주교 집안이 아니었다. 당시 신자가 아니시던 모친께서 초등학교 막 진학한 필자를 성당에 보내신 것이 계기가 되어 온 가족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언젠가 모친께 물었던 적이 있다. “엄니는 어떻게 처음에 저를 성당에 보내신 건가요?” 그때 모친의 답변은 이러했다. “글쎄, 같이 몰려다니던 천주교 신자들이 그렇게 부럽더라.”
그런데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시작된 신앙이 어느덧 자기의 고유한 신앙이 될 때가 찾아온다. ‘부모님’이나 ‘가족’의 신앙이 어느 순간 ‘나’의 신앙,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때 신앙은 자기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두 번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시작에서 신앙은 우리 인생의 하늘과 같은 존재가 되며, 삶을 온통 새롭게 변화시킨다.
프랑스 유학 시절 한 은사 신부님의 본당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미사에 앞서 행해진 공동체 모임에서 한 자매님이 신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걸 들은 기억이 난다. “본당 신부님께서 저에게 10분 동안, 내가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60년이나 되는 길었던 준비의 시간을 어떻게 단 10분 동안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자매님은 이미 이 한 문장으로, 신앙으로 변화된 60년 인생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표현하셨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던 60년의 무의미했을 인생 전체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변한 것이다.
사람이 성장해가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만의 삶을 계획하고 건설해 나가듯, 신앙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신앙이 있다. 그리고 자기만의 고유한 신앙 여정을 찾아가는 사람은 신앙과 삶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삶도 신앙도 모두 같은 내가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작가가 하느님을 ‘인생의 내비게이터’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신앙이 자기 삶의 나침반임을 깨닫는다.
나에게 신앙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먼저 내가 누구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나오게 되었는지 떠올려보면 어떨까. 나를 신앙의 길로 이끌어 준 수많은 손길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신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남의 손에 끌려다니는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신앙이 아닌, 나 스스로 의식하는 나만의 주도적 신앙의 여정에서 나는 어디쯤 와있는가? 어쩌면 나만의 진정한 신앙 여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그 여정을 시작할 채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