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인생이라는 밭에서 자라나는 나무와도 같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 여정을 가진 것처럼, 신앙도 다양한 인생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자라나 성장하며 어느새 열매를 맺고 누군가를 위한 그늘이 되어준다. 신앙은 생명체와 같아서 관심을 두고 돌볼 때 많은 성장을 이루지만, 돌보지 않고 외면할 때 성장하지 못하고, 있던 신앙마저 약해진다.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 사람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신앙은 전수되고 성장한다. 특히 교회에서 하는 봉사는 신앙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된다. 필자도 일반대학교 재학 시절 중고등부 교사를 하며, 신앙에 대해 더 찾고 묻고 하다가 보니 이렇게 사제로 살게 되었다.
나의 신앙은 얼마나 성숙했을까? 신앙이 성장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러 신앙 이야기를 듣다 보면, 크게 두 단계의 신앙이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첫 단계는 ‘유아기적’ 신앙이다. 부모나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상태에 있는, 그러나 아직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 신앙으로, 대체로 의무를 준수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에 머문다. 그런데 이처럼 수동적이고 피동적이며, 의무감에서 비롯된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하고 쉽게 활력을 잃기 마련이다. 신앙은 살아있는 것이며, 관계 안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신앙에서 ‘관계를 맺는 신앙’으로,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하는 신앙으로 전환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앙은 자신의 것이 된다. 이 단계의 신앙은 능동적, 의식적이며 관계를 맺는 신앙이다. 이 단계에서는 신앙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가 된다.
신앙이 성숙했다는 것은 그 신앙이 자기 자신의 것이 되었음을, 삶을 살아가고 계획하는 데에 신앙이 기준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앞의 두 단계는 무를 자르듯 가를 수는 없다.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람에 따라 두 단계를 서로 오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 공동체 안에 머물 때 성장한다는 것이며, 거기서 겪는 어려움은 신앙과 인생의 성장에 자양분이 된다.
신학생 양성에 종사하면서, 글을 읽는 것보다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다. 학부 2학년 신학 입문 강의 때 학생들에게 종종 ‘나에게 신앙이란?’이라는 과제를 내준다. 모태신앙을 갖고 학생 시절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다 신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들도 신앙에 대해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 필자는 그들을 격려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신앙에 대해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가진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에 대해, 성소에 대해 갈등을 가져보지 않고 사제가 되는 것이 더 위험할 것입니다. 모든 신학자와 사목자가 그 길을 거쳤습니다. 여러분도 용기를 내어 신앙에 대해 계속 묻고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앙에서 겪는 어려움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자신의 신앙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어려움이 신앙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먼저 그 길을 걸어간 분들의 이야기가 많은 도움을 준다. 성경도 신앙의 완벽한 영웅들이 아닌, 그러한 길을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신앙의 어려움을 딛고 성장한 ‘옆집의 성인’이 매우 많다. 우리도 그러한 옆집의 성인이 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며 우리가 받은 신앙을 잘 돌볼 수 있다면 말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