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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27. 테이프 커팅/사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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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 관솔 갤러리 개관에 있어서 기획의 하이라이트는 테이프 커팅이었다. 이런 날이 또 올 수 있을까? 10여 분의 어르신들이 나란히 오색줄 앞에서 금색 가위를 잡고 갤러리 개관 테이프를 커팅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반적인 행사에서 감히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도 어렵고, 허리가 반으로 기울어진 어르신께서는 서 있는 것도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행사 당일이다. 어르신 한 분은 새벽같이 오셔서 할 일이 있는지 물으셨다. 행사 시작 20분 전에 오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몇 년 전까지 반장이셨던 어르신은 이집저집을 다니시면서 미리 오라고 당부를 하셨다고 했다.

개관식 테이프를 커팅하는 주인공은 열다섯 분이다. 마을 어르신 여덟 분과 이장님과 꼬사모(꼬미를 사랑하는 모임) 회장님과 외부인은 다섯 분이다. 행사 전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테이프 커팅은 대부분 동네 어르신들께서 하시니 양해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행사 시작 시각은 오전 11시. 서 있기조차 어렵다고 하신 어르신과 또 한 분 어르신만 멀리 자리에 앉아계셨다. 대략 난감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개관식 일정을 공유하고, 참석하신 분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눠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아침부터 왔다 갔다 하시던 어르신도 안 보였다. 어르신 다섯 분이 몽땅 빠지셨다. 열다섯 금색 가위도 모자랄 것 같았는데 다섯 자리나 비었다. 주변에서 나보고 오방색 줄 안으로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각본에 전혀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열한 명만이 금색 가위를 잡았다.

다리가 없었던 시대는 홍수 나고, 강물이 얼면 섬나라가 되었던 깡촌 시골 동네, 꼬미 마을에 갤러리가 생겼다. 평생 잊지 못할 꼬미 관솔 갤러리 개관식에 동네 어르신 모두가 오색줄 포토라인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을 큰 액자에 걸어두고 방문객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꿈이 갑자기 사라졌다. 행사 며칠 전부터 여러 번에 걸쳐, 예쁜 한복 입으시고 10시 40분까지 행사장에 오시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관솔 작가이신 아버지와 어르신 한 분만이 그 자리에 함께하셨다. 행사를 마친 후 이유를 들어보니 한 분 한 분 특별한 사연이 다 있었다. 이 일로 영원히 가슴에 새길 말씀이 생겼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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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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