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사도는 요한 사도의 형으로, 갈릴래아 출신입니다. 이들은 부친과 함께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를 잡는 어부들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도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카 5,10-11) 또 예수님께서 열병으로 누워있던 시몬 사도의 장모를 낫게 해주신 현장에 함께하기도 했습니다.(마르 1,29-31)
사도행전을 보면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받은, 사도로서는 첫 순교자입니다.(12,1-2) 전승에 따르면, 그는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유다 사도와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순교하게 됩니다.
야고보가 순교한 곳에는 이후 그를 기념하는 성 야고보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야고보의 제자들은 그의 유해를 갈리시아 지방으로 옮겨 모셨으나, 711년 에스파냐와 이베리아반도 전역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족의 침략을 받고 나서 그 유해 또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813년 해당 지방에서 살던 한 은수자가 별빛에 이끌려 기적적으로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그 위에 성당이 건립됐습니다. 이는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에서 ‘콤포스텔라’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는 자연스럽게 야고보의 이름을 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됐습니다.
야고보의 무덤에서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이 사라센 제국에 의해 점령되면서, 순례가 어려워지자 이곳은 로마와 함께 유럽인이 즐겨 찾는 3대 순례지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전 유럽을 가로질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여러 순례길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후대에는 ‘카미노’로 불리게 된 이 순례길에 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건립되며 순례자들을 위한 쉼터가 조성됐습니다.
중세 전설 가운데 무어족이 침략했을 때 야고보가 백마를 탄 기사 모습으로 나타나 앞장서 무찔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파냐 미술 작품에서는 종종 말을 탄 기사 모습을 하고 있는 야고보가 등장하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 미술에서는 그와 함께 조개껍데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또한 그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하는데, 야고보가 순교한 뒤 제자들은 그의 시신을 빈 배에 태워 물에 띄웠습니다. 배는 이베리아반도 해안까지 갔지만, 야고보의 시신은 조개껍데기에 싸여 손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전설은 어느 기사가 말을 타고 가다 물에 빠지자 야고보의 도움으로 조개껍데기에 둘러싸여 무사히 살아날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는 두 명의 야고보가 있습니다. 혼동을 피하고자 전통적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요한 사도의 형인 야고보는 대(大) 또는 장(長) 야고보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는 소(小) 또는 차(次) 야고보로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