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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29. 마을광장 벤치 / 자연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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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마을 뒷산 산소(山所)를 정리하면서 벤 장신(長身) 소나무 몇 그루가 그대로 산에 있었다. 주민들은 우선 장승 재료를 생각했다. 장승을 만들고 남은 것으로 무엇을 할까? 마을광장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벤치를 놓으면 운치도 있고, 정겨울 것 같다고 했다.

누가 할 것인가? 힘들게 만들지 말고 사서 놓자고 한 이들도 있었다. 사면 편하기야 이루 말할 수도 없다. 다양한 의견이 등장할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기 아니면 한 발 뒤로 물러서기의 연속이다. 나무가 아까우니 마을 광장 가장자리에 갖다 놓기만이라도 하자고 했다. 굴삭기 비용을 들여서 산에서 광장으로 실어 나르고, 전기톱으로 같은 크기로 잘랐다. 나무가 생긴 모양 그대로 두고 썩지 않게 바닥면만 조치하면 멋진 벤치 의자가 될 것 같았다.

한여름 땡볕을 피해 아침저녁 나절로 노인회장님과 지전 어른께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낫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놓으셨다. 90대 노인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시는 모습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나무 한 토막이 직경 40~50㎝에다 길이가 180~240㎝라 3개의 나무통을 돌려서 깎는 데만 해도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일하는 중간에 지전 어른 손가락도 낫에 베여 다쳤다. 관솔 작품 만드시다가 조각칼이나 작업도구에 수시로 다친 경험이 있으신 노인회장님은 비상약 상자를 꺼내서 치료에 필요한 약품과 도구를 꺼내 가서 치료를 해주셨다.

동네 남자 어르신이 딱 세 분이셨지만, 한 분은 100세가 넘으셔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이분은 며칠 전 하늘나라 주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서로 소통하며 지내는 어르신 두 분이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 또한 깊게 다가왔다. 언제까지 함께 하실 수 있으시려나 싶어서 더욱 애잔했다.

시간과 정성이 깃든 나무의자는 모양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무껍질 벗기기가 완성된 후, 지게차로 7개 기와꽃밭 중간마다 놓았다. 참 근사하다. 기와꽃밭이 생긴지도 얼마 안 되어서 소나무 벤치가 더 돋보였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고향 향기가 풍겨 나오는 듯했다. 스쳐 지나치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 과정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그때 그 사람과 그 자연을 생각나게 하고, 마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문화적 자산이며 영적 풍요로움이다.

소나무 벤치는 서로의 생각 차이로 아직 미완성 그대로 2년째 기와꽃밭 중간에서 껍질 벗겨진 채, 색바랜 채로 자기를 찾아주고, 앉아줄 이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몸으로 말하고 있구나 싶었다.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은데, 때로는 함께 의논할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때로는 생각 차이로 합의되지 않아서, 때로는 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더 커서, 때로는 갈등을 처리할 힘이 부족해서, 때로는 추진력과 설득력이 부족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이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식별은 접어두고, 우선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있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면 바라보기가 수월하다.

귀하고 소중한 그 나무가 다 썩고 나면 그때는 후회해도 때는 늦으리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인가? 일의 성공인가? 인간관계의 화합인가? 성령의 입김 우리에게로 불 때, 새로운 힘이 올라오리라 믿는다. 그때는 한치의 주춤거림도 없이 바로 일어서리라는 다짐과 함께….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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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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