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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32. 말방길 / 자연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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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 마을은 낙동강 변에 있다. 고령군 소속이지만 고령읍보다는 대구시가 생활권이었다. 그래서 이동수단은 통통배였다. 배를 탈 수 없는 때가 오면 섬 같은 마을이 되었다. 홍수가 나거나 태풍이 불거나 강물이 얼어붙을 때이다.

이 마을과 강을 이어주는 길이 바로 말방길이다. 두세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다란 길이라 소 먹이러 가는 길, 배 타러 가는 길로 이용되었다. 넓은 길로 빙 둘러서 가면 시간이 2~3배 걸려서 모두 이 길을 애용했다. 그 옛날 말방길은 마을을 떠나 어디론가 이동하는 설렘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갖고 싶은 것도 사러 가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길이다. 울퉁불퉁 꾸불꾸불한 흙길을 밟는 신선함도 있었다.

도시화 현상으로 마을 인구도 줄어들고, 교통도 발달하면서 통통배가 사라졌고, 한동안 말방길도 유명무실해졌다. 수년 전에 달성보가 건설되면서 이 길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동 인구가 워낙 적으니 길은 있지만, 여름엔 풀로 덮여 발을 뻗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해 전부터 측량을 통해 원래의 길도 찾고, 지난해에는 지자체 지원을 받아 반듯하게 길도 닦고, 마을운영비로 파쇄석도 깔아 신작로처럼 넓어졌다. 파쇄석이 깔린 길옆에 제법 넓은 땅도 생겼다. 이름 하여 말방꽃밭을 무엇으로 채울까? 매년 심지 않아도 되는 이 마을에서 사는 야생화꽃밭이 되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2021년 첫해에 기와꽃밭에서 자란 몇 포기의 맨드라미가 한 해 동안 씨를 스스로 땅에 흩날리더니 수백, 수천 개의 맨드라미 모종을 밀어 올렸다. 꽃밭 가득 빽빽하게 찬 모종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시멘트 바닥 틈마다 끼여서 올라온 맨드라미를 보고 주님께 찬미를 드렸다. 창조주 하느님의 활동하심으로 인한 생명의 신비로움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 온 후 어느 날 아침, 말방길 꽃모종을 한다고 주민들에게 알렸다. 노인회장님은 새벽부터 맨드라미 모종을 뽑아 수레에 싣고 부지런히 말방꽃밭으로 실어나르셨다. 이장님, 부녀회장님, 그리고 마을 주민들 여럿이 함께하니 일찌감치 마무리되었다. 퇴근길에 간간이 잡초도 뽑아주고, 동네 오라버니들이 길옆 풀도 정리해 주어, 첫해는 잘 관리가 되었다. 말방꽃밭에서 마을 뒷산으로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곧 있으면 마을 탐방객들이 이 길을 지나다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면서 꿈에 부풀어 평화와 기쁨도 누렸다.

봄이면 강변 둑에는 벚꽃이 만발하다. 말방길도 벚나무가 심어지면 온 동네는 벚꽃 천지가 될 것이다. 강변 둑 끝 지점에 연결된 말방길은 동네로 유입되는 기역자로 된 지금 길이다. 최근에 (사)고령군관광협의회 회장님(김용현)이 달성보와 연결되는 말방길을 보시고 스토리가 있는 마을로 가꾸는 데 희망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잘 가꾸어진 길로 탈바꿈될 그 날을 그려보며 꼬미 마을 청사진을 새롭게 그려본다. 길 하나로 새로운 꿈과 희망이 꿈틀거린다.

현재 마을의 역사를 제일 많이 알고 계신 노인 회장님(김태만)께 말방길의 유래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말 타고 과거보러 가던 길이라고만 전해 들었다고 하신다. 이제는 과거보러 갈 일은 없고, 어쨌든 변화와 성장을 의미하는 길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 이어주는 소통의 길, 생명의 길, 푸름의 길 말방길이여, 꼬미 동네를 드러나게 하고 빛나게 하여라. “그대가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십시오.”(1티모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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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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