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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33. 노노(老老)케어 / 사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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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실댁이 대구 가는 날이라 윷놀이 같이 못 하겠네.” 꼬미 동네 어르신들은 아침나절에는 각자 집에서 할 일 하고, 점심식사 후 2시경부터 마을 회관에 모인다. 일곱 분이 편을 짜서 두 팀으로 나누어 윷놀이를 시작한다. 매일 하는 윷놀이지만, 할 때마다 신선하고 재미있어하신다. 어릴 때부터 하던 놀이, 시집온 후론 정월 대보름마다 하던 놀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생을 할 수 있는 놀이, 윷놀이는 우리의 참 귀한 재산임에 틀림없다.

윷판은 작은 홑이불이다. 얼마나 사용했는지 하늘하늘하다. 하늘하늘한 홑이불을 바꿔드릴까 생각하다가 어르신들이 날마다 함께한 세월이 담겨 있는 듯해서 그냥 두었다. 홑이불은 어르신들의 손때 묻은 놀이터이며 인생 오후, 하루 오후의 삶이 새겨져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몸져눕기 전까지 같이 할 놀이의 중심에서 그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홑이불이라 생각하니 낡은 홑이불에 더욱 정이 갔다. 그런 의미에서 홑이불은 어르신과 나를 연결해 주는 또 하나의 성사이다.

윷놀이가 끝나고 나면 얼마간 휴식을 취한 후에 저녁밥 짓는 시간이다. 마을회관 텃밭에 심어놓은 오이랑 가지랑 고추랑 반찬거리를 준비하신다. 밥하시는 분은 정해져 있다. 최연소 89세 오실댁, 환터댁, 삼대댁 세 분과 91세 창녕댁이다. 92세, 93세, 95세 세 분은 형님들이라 밥하시는 것은 면제이다. 그분들은 간간이 설거지를 돕는다. 이 연세에 함께 놀이하고 함께 밥해 드시는 일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보다 더 귀한 ‘서로 돌봄’이 어디에 있으랴. 자녀들 방문이 뜸해도 함께 사는 동네 벗들이 있어서 시간도 잘 가고 노후가 즐겁고 살만하다.

누군가 병원 가셨다고 하면 한 걱정이다. 혹시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실까 봐. 병원에서 돌아오고 나면 병원계실 때 병문안 못 가보았다고, 금일봉 들고 집으로 찾아가신다. “얼굴에 살이 좀 빠지긴 했어도 이제는 괜찮다고 하더라” 하시며 방문한 얘기를 서로 나누며 함께 걱정하신다. 90세 노인들이 서로를 챙기고 아끼고 염려하시며 살아가시는 모습이 아름답다.

어르신들은 자녀들이 방문하고 간 후엔 뭐라도 먹거리를 들고 오셔서 마을회관에서 함께 나누어 드신다. “우리 딸이 가지고 온 건데” “우리 며느리가 가지고 온 건데” 하시며 딸, 아들을 은근슬쩍 자랑도 하시고, 때로는 본인이 준비한 것인데도 아들딸들 이름 대며, 자녀들 낯을 세워주신다. 환갑 넘은 자녀들 감싸는 어르신들 보며 자식 사랑은 끝이 없구나 싶다.

10여 년 전쯤 이 마을에도 노노케어가 지자체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적이 있다. 더 연세 드신 옆집 아지매 집에 가셔서 못질도 해 주시고, 빗자루도 매주시고, 식사는 제대로 하셨는지 방문하고 와서 케어 일지를 쓰고 계시는 아버지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에 시골 노인이 “노노케어, 노노케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졌었다. 시골 어르신들의 삶에는 이웃사촌이 삶의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노케어하며 살아가시는 이분들이야말로 참다운 이웃 사랑가들이시다. 어르신들이시여, 하늘나라 주님께서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서로 돕고, 서로 돌보는 노노케어 삶으로 끝까지 신명 나게 살으소서!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르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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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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