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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35. 대나무숲 / 자연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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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시절 산림녹화 사업과 더불어 부족한 식량 증산을 위해 산을 개간하여 농토로 활용하거나 과일나무를 심으면 돈 대신 밀가루를 지급한 적이 있었단다. 그 일환으로 우리집 뒷산 주인이 산 일부를 밭으로 만들어서 복숭아나무를 심은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복숭아밭은 온데간데없고, 아랫녘에 대나무를 심어둔 것이 차츰차츰 산으로 올라가 복숭아밭 전부가 대나무숲을 이루었다. 멀리서 보면 산속에 웬 대나무숲인가 싶다. 이 대나무숲이 꼬미 마을의 또 하나의 쉼터, 놀이터가 될 수 있으리라.

대나무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아침이다. 대나무는 고결함을 나타내는 매난국죽 사군자의 하나로 절개와 의를 상징하는 문인화의 주인공이다. 그 마디는 중간중간을 끊어주는 시련을 통해 성장을 멈추고 기다리면서 힘을 모으는 휴식을 의미한다.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 때처럼 삶에서 버거움과 힘겨움을 견뎌낼 때는 삶의 마디를 만들고 있을 때이다.

대나무가 마디를 통해 휴식을 마련하듯, 우리 또한 삶터에서 열정을 쏟은 후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휴식이 끝난 후, 다시 쭉쭉 뻗어올리는 대통은 다음의 마디를 만나면서 다시 쉼을 시작한다. 대통의 크기는 처음과 끝이 같다. 그 비결은 아마 마디 덕분이리라. 일과 쉼의 균형이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꼬미 대나무숲에서 인생의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을 노래할 때를 기다린다.

우리집 뒤뜰 울타리도 대나무다. 조릿대도 있고, 제법 큰 대통도 있다. 2년 전 KBS1 TV 6시 내고향 ‘셰프의 선물’ 촬영단이 우리집에 와서 ‘아버지의 조각’을 녹화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 쉐프는 전복죽통밥을 만들면서 대나무를 사용했다. 긴 세월 동안 대뿌리들은 밥통을 만들 만큼 굵어진 것이다.

대통밥은 고향의 향기를 실어주고, 뭔가 모르게 마음속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차오르게 한다. 서울 명동에 살 때 가장 즐겨 찾던 식당 역시 죽통밥집 ‘오우가’였다. 밥을 먹고 나면 쓰고남은 빈 대통을 얻어와서 연필꽂이로 사용하는 기쁨도 있었다. 올봄에는 우리집 대문을 대나무로 엮었다. 대문을 바라볼 때마다 안정감과 평화를 누린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대나무숲에 길을 내면 마을의 좋은 관광지가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우선 아쉬운 대로 주변을 정리해 보셨다고 했다. 구순이 가까우신 노인이 끊임없이 마을을 생각하고, 마을을 가꾸고자 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대나무숲을 아버지를 따라 산길로 올라갔다. 죽은 나무들만 정리하면 좋은 숲길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대나무를 심어놓고 가꾸고 손질한 적이 없었기에 우후죽순 자란 그대로였다. 한 이틀 대나무숲에 가셔서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하게 사이 공간을 마련해 두신 것이다. 정확하게 길을 낸 것이 아니기에 여기가 길인지, 저기가 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아버지의 그 정성이 놀랍기만 했다. 우선 대나무숲 쉼터로 가능성이 있는지 제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둥근산 오솔길 가는 길목이라 그 위치로는 기가 막혔다. 산 주인 허락은 받았지만, 대나무를 심었다는 분이 원하지 않으셔서 보류 중이다.

마을을 함께 만들고 가꿔가는 것은 고비의 연속이다. 대나무처럼 때를 기다리고 쉬어야 할 때가 자주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힘이 있어야 한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에서 꽃을 볼 수 있음을 알고 끊임없이 희망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리라.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묵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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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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