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오 사도는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에서 세금을 걷는 세리였다가 “나를 따라라” 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마태 9,9 참조) 당시 세리는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대신해 동족에게 세금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오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어느 날 세관에 앉아 있다가 주님의 부르심 속에 자비를 체험하고 열두 사도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마태오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갈릴래아 태생으로 추정되며,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알패오의 아들로, 원래 이름은 레위였습니다.(2,14)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레위 역시 마태오라는 새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루카 복음에서도 레위라는 세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5,27) 복음서마다 마태오와 레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교회 전통은 둘을 동일 인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일찍이 초대 교회 때부터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는 특별히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을 위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합니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따르면,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뒤 12년 동안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후에 다른 민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였던 파피아스의 주장을 재인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마태오가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마태오가 은수자로서 채식만 하면서 생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도 전승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 순교록」을 보면 마태오는 유다 지방을 순회하다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해 그곳에 묻혔고, 10세기경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인 살레르노로 옮겨져 공경을 받았습니다. 「예로니모 순교록」에서는 페르시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순교 방법 또한 칼에 찔리거나 화형 혹은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각각 다릅니다.
교회 미술에서 마태오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해 날개 달린 사람, 다시 말해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리옹의 주교이자 교부인 이레네우스 성인이 마태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구세주의 인간성을 강조한 것에 착안해 선택한 것입니다. 마태오는 세리였던 경력으로 인해 은행원과 경리, 회계사와 세무 직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도 장부를 펼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됩니다. 가톨릭교회는 마태오의 축일을 9월 21일에, 동방 교회에서는 11월 16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