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2 참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늦게까지 남겨 둔 좋은 포도주에 대한 과방장의 찬사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늦게까지 남겨둔 ‘좋은 포도주’에서 그리스도 신앙인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일까?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흥겹게 하듯, 예수님과 함께할 때 삶은 흥겨워지고 자기도 모른 채 예수님을 닮아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 참조)를 풍기기 때문이다.
좋은 포도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도 향기도 깊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익는 것은 포도주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품이 깊어지며 존경심을 자아내는 사람이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오랜 신앙을 통해 삶에 배어나는 거룩함의 향기가 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유행가 가사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린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에서 무가치하고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완숙을 통해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풍기는 향기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 향기는 진해지고 그윽해진다. 가끔 출신 본당에 갈 때가 있는데,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도하는 옛 교우들을 만날 때면 그분들에게서 배어 나오는 거룩함의 향기를 느낀다.
그뿐이 아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익어갈 뿐 아니라, 더 젊어진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로마 8,2)
그리스도 신앙의 매력은, 나이가 들수록 더 젊어지며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에 있다. 비록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을 잃고 쇠약해지지만, 성령과 함께라면 영혼은 계속해서 젊어지고, 젊은이들이 깨닫지 못하는 인생과 신앙의 지혜를 터득하며 마음의 깊은 평화를 누린다. 종종 노년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어르신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말씀드린다. “어르신, 지금 모습 그대로 보기 좋고, 저희에게 귀감이 됩니다. 계속 건강하게 살아만 주셔요.”
그러나 환상은 금물이다. 저절로 익어가는 것은 없다. 술이 잘 익기 위해서는 누룩이 필요하다. 누룩이 시간과 잘 작용해야 맛좋은 술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술이 되지 않고 부패가 되어 악취를 풍길 수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신앙이 저절로 우리를 성장시켜 주지 않는다. 시련이 삶에 고통을 주지만 그 시련이 나를 성장시켰음을 나중에야 깨닫는 것처럼, 신앙에서도 시련과 위기는 힘든 시기로 다가오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련과 위기는 우리 신앙이 맛 좋고 향 좋은 술처럼 익어가도록 하는, 반드시 필요한 누룩이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한 신앙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신앙은 삶 안에서 아주 조금씩 성장한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에서는, 수많은 만남과 사건, 시련과 위기, 환희의 순간까지도, 모두 나의 인격을 무르익게 해주는, 나의 인격이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닮아가는 계기들로 변화한다.
여기에 신앙의 매력이 있다. 당장은 변화도 없고, 무미건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조금씩 변화해 간다. 우리가 맛 좋고 향 좋은 포도주로 더 잘 익어갈 수 있도록, 우리 삶에 존재하는 모든 것, 시련과 위기까지도 끌어안고, 계속해서 주님의 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