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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36. 꼬미관솔 갤러리 기획전 / 사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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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관솔 갤러리 기획전 첫 번째로 10월 초에 경북 고령군에 살고 계시는 80세 이상 어르신들의 공동 작품전을 준비하고 있다. 관솔 갤러리의 역할은 지역사회 내 주민들이 누구나 자신의 역량과 기량을 드러내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창조 작품이듯, 창조자의 모상인 우리는 모두가 하늘로부터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다. 나의 부친이 80세 넘어서 재능을 발휘하여 관솔 작가로 보람있게 살아가시는 것처럼 어르신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꿈이 있고, 하루하루 삶이 즐겁고 충만하며 아름다운 노후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이다.

노인들의 삶은 ‘역할 없는 역할(roleless role)’로 원치 않는 자유시간이 많다. 그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즐길 수 있으면 남은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문화 코드인 ‘여가생활’을 그들이 어떻게 영위하는가에 달려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분들은 개인으로, 그렇지 않으면 공동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다. 경북 외 지역 분들은 찬조 출연할 수 있다. 조건은 80세 이상이다. 올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 중이다.

대부분 어르신들의 첫 반응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나? 아무것도 없어, 나는 못 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생각이 바뀌셨다. 대가야 읍내에 계시는 88세 어르신은 코로나 시절에 바깥출입도 할 수가 없어서 이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재봉틀로 바느질을 시작하셨다. 젊은 시절에 입던 옷을 지금 몸에 맞게끔 줄여서 입기도 하고, 새로운 옷을 만들기도 하셨다. 입지 않는 헌 옷으로 조끼, 치마, 바지, 원피스, 보온용 앞치마 등 다양한 스타일의 옷도 만드셨다. 추위를 많이 타는 분이라 추위막이용 옷들은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한 별별 희한한 것들이 많았다.

“어르신은 이 옷으로 작품전 나가시죠?” 했더니, “하지 마라. 이게 뭐라고, 헌 옷으로 만든 이것이 뭔 작품이라고. 내가 그때까지 살지 안 살지도 모르는데…” 하시면서 지금까지 만든 옷을 가지고 나오시는데, 너무 많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같은 읍내 관동 어르신들은 복주머니 팀이다.

쌍림면 91세 어르신은 “나는 만들 줄도 모르고, 재주가 하나도 없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라고 하셨다. 계절별로 집 주변에 자라는 꽃을 말려서 작품을 만들기로 하였다. 방문할 때마다 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푸른 보리싹을 잘라서 말리고 계셨다. “이것도 작품이 될까?” 하셨다. 보리는 꽃이 아니라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어떻게 보리싹을 생각하셨어요? 보리 너무 예쁜데요” 했더니,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꼬미 마을 어르신 일곱 분은 안 쓰는 이불 홑청을 뜯어서 조각조각 내어 꼬마 버선을 만들고 계신다. 89세 어르신이 첫 시작을 했는데 버선 입구에 바느질 선이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을 잊어버리신 것이다. 다음날 마을 회관에 다 모이신 어르신들이 각자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93세 어르신이 그 방법을 기억하고 계셨다. 버선을 만들다가 실이 다 되면 바늘귀는 제일 연장자인 95세 어르신께 부탁하신다. 귀는 어두운데 눈이 제일 밝으신 것이다.

성산면 97세 어르신은 “버선이나 주머니는 그래도 쉬운 건데,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나는 뭐 하겠노?” 하신다. “어르신도 하실 수 있는 게 있을 거예요, 같이 찾아보아요” 하며 소재를 찾고 있다. 80세 이상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삶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날이여, 어서 오라.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 하느님과 비슷하게 그를 만드셨다.”(창세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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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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