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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39. 정자나무 / 자연과 사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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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는 어느 마을 할 것 없이 큰 정자나무가 오고 가는 길손들을 제일 먼저 맞이해 준다. 비도 막아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햇볕도 막아주어 우산도 되고, 양산도 된다. 아이들에게는 숨바꼭질 터, 나무를 오르내리는 미끄럼틀도 되고, 함께 숙제하고 공부하는 공부방도 된다. 어른들에게는 장기, 바둑, 윷놀이의 놀이터, 이야기 나눔터도 되고, 연극을 할 때는 극장이 되기도 한다. 한여름 뙤약볕을 피하는 유일한 피서지이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는 잔칫집이며 공동의 집도 된다. 정자나무는 늘 그렇게 사람을 품어주고 희로애락을 누리게 해 주는 보금자리였다.

아쉽게도 꼬미 마을에는 지금은 정자나무가 없다. 자라면서 정자나무 이야기를 아마 수백 번은 들었을 것이다. 1959년 9월 11일 사라호 태풍 때 나무가 쓰러졌다. 나무둘레가 다섯 아름, 750㎝가량이었고, 나무 중앙에 둥근 홀이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했다고 한다. 쓰러진 나무가 트럭으로 15대가 되었단다. 얼마나 큰 나무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무를 판 돈으로 밭 약 1000평을 샀다. 지금은 그 밭을 팔고 논 505평을 산 것이 아직도 동네의 자산으로 되어 있다. 그 땅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마을 잔치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서로 즐거움도 나누고 기쁨도 누린다. 인간이 나무에게 해준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나무는 죽어서도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통공처럼, 자연과 인간 사이의 통공을 생각해 본다. 사람은 자연을 가꾸고, 고마움도 전하고, 자연은 사람에게 호흡 간에 좋은 공기를 불어넣어 건강한 생명으로 유지해 준다. 마을 어귀의 큰 정자나무는 기억이 살아있는 한 마을의 지킴이이고, 우리의 정신적 유산으로 내적 삶을 풍요롭게 한다. 꼬미 마을에 그 옛날의 기품있고, 우람한 정자나무는 사라졌지만, 마을 회관이 세워지면서 사람이 손으로 만든 치산정(雉山停)이 주민을 맞이하고 있다. 2년 전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마을 예술인 배철섭씨가 손수 제작한 치산정 현판도 달고, 주민들이 지붕 위를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도색도 하여 정갈하게 꾸며 놓았다. 이제 역사는 정자나무에서 마을 치산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치산정은 새로운 마을 문화를 만들어 낼 것이고, 또 다른 형태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찬미받으소서」 회칙 146항에서 토착 공동체와 그 지역의 문화 전통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씀하신다. 농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해 주시고 시골살이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주는 말씀이다. 눈만 뜨면 자연이 몸으로 느껴지는 이곳에서의 삶은 교황님의 회칙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시골은 나무 하나, 풀잎 하나, 꽃잎 하나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기후 위기로 인해 가장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된 농촌이기도 하다. 가뭄과 홍수, 태풍과 수해의 피해가 삶 터, 농토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생태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 합리적 활용 방법을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효용과는 별도로 생태계가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찬미받으소서」 140항) 이 말씀은 꼬미 마을에서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고 주민들의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나무 하나에도 사람들의 생사고락이 들어있고, 나무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살아있는 한 자연과 우리는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나무는 나무의 가치대로, 사람은 사람의 가치대로 함께 숨 쉬는 마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지혜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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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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