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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루카 복음사가 (10월 18일)

+1세기, 안티오키아 출생, 복음사가,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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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세비오·예로니모·리옹의 이레네오 성인 등에 따르면, 루카 성인은 안티오키아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였습니다. 성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필레 1,24)이자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를 ‘사랑하는 의사 루카’라고 지칭했습니다.(콜로 4,14)

스테파노 성인의 순교와 박해로 많은 이가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안티오키아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돌보기 위해 바르나바 성인을 파견했고, 그는 타르수스에 있던 바오로를 데려와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루카는 아마도 이때 사도들과 알게 되면서 특별히 바오로를 존경하고 따랐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루카는 51년경에 있었던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수행하며 힘껏 도왔습니다. 57년까지 필리피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하다 바오로의 제3차 선교 여행 때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나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차 갇혔을 때도 늘 곁에 있었습니다.

루카는 바오로의 순교 이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루카는 복음서를 집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찾아뵙고 주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직접 만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에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초상화로 알려진 이콘의 작가가 루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그는 ‘붓’보다는 ‘펜’으로 예수님 탄생과 유년기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그림처럼 묘사했습니다.(루카 1―2장)

루카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집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팔레스타인 밖에서 80년 전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 복음을 시작하는 머리말(1,1-4)을 보면, 그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대체로 루카가 염두에 둔 독자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와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예수님 승천부터 63년경 바오로가 로마에서 선교 활동에 매진할 때까지 초대 교회의 성장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반부는 성 베드로 사도에게, 후반부는 바오로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루카 자신에 관한 구절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루카는 바오로의 순교 후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아카이아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며 온갖 고난을 견디며 주님을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던 루카는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루카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따라 황소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루카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격과, 주님과 바오로를 위한 희생 및 충직함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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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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