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41. 모래사장 / 자연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고향~”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변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이다. 모래사장 가장자리는 포플러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동네 민물이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길목에는 송사리 떼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어른들은 모래사장에 큰 우산을 받쳐놓고, 누워서 모래찜질을 한다. 아이들은 백사장에서 놀다가 힘들면 버드나무 숲, 샛강에서 물놀이를 한다. 강변 모래사장은 우리의 쉼터였고, 놀이터였다. 홍수 나는 여름이면 이쪽 끝과 저쪽 끝이 보이지 않던 강이 겨울이면 온 강바닥이 모래사장으로 덮인다. 모래톱에 덮여서 강물은 어디에 붙어있는지 보이지 않는 샛강처럼 된다. 이런 모습을 눈만 뜨면 평생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4대강 사업으로 수천, 수만 톤의 모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날마다 모래를 실어나르던 수십 개의 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니던 그 모습이 떠오르면 가슴이 미어진다. 다시 몇만 년, 몇억 년의 세월이 흘러야 모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꼬미 마을의 자산 중의 자산이었던 그 모래사장을 잃고 몇 년간 분노했었다. 수만 년 동안 강과 함께 살아온 모래들의 아우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모래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바람과 비, 천둥과 번개, 홍수와 가뭄, 서리와 이슬 등 자연이 만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인간이 저지르고야 말았다.

모래사장이 없으니 새들이 앉아서 쉴 쉼터로 근근이 찾은 것이 수문보 난간이다. 이제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으니 여기는 그들의 자리라고 표시라도 해둔 듯이 하이얀 새똥으로 영역 표시를 해두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보가 생긴 후, 몇 년이 지났다. 녹조라떼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환경단체들이 강력히 요구하니 수문을 열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두어 군데 모래톱이 생겼다. 모래톱 하나는 하트 모양으로 생겼다. 그 위에서 새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이것이 웬 득템이냐”는 듯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기쁘고 즐거워서 축제를 하는 듯했다. 모래를 다시 바라보는 그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햇살과 모래가 어울려 은빛, 황금빛으로 빛나는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올랐으리라.

어느 날, 쓰라린 가슴을 안고, 그 옛날 모래의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강가로 갔다. 물가로 갈려면 모래 속으로 발이 폭폭 빠져 들어가는 긴 모래사장을 타박타박 걸어가야 해서 그 길이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참으로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약간의 풀숲길을 지나면 바로 물가다. 하얀 모래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고, 파쇄석처럼 생긴 돌들 사이에 진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래가 그리워서 그나마 맨질맨질한 돌 몇 개를 주워왔다. 잠시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노라니, 눈물이 그냥 줄줄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자연과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지금도 금빛 모래사장을 생각하면 눈가에 이슬이 절로 맺힌다. 수만 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 낸 그 모래와 애도의 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연을 빼앗긴 트라우마도 생길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이제 꼬미 백사장 모래한테서 배우는 시간이 사라졌다.

한때는 발전과 물질적 진보가 우리의 희망이고,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덜 일하고, 덜 소비하고, 덜 서두르는 생태적 회심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오늘도 ‘덜하는’ 것으로 회심하는 날이다.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매우 뛰어난 분별력과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주시니.”(1열왕 5,9)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10-2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6

예레 31장 10절
나는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그들을 위로하며 근심 대신 즐거움을 주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